미국 공화·민주 양당의 당내 경선전이 종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현지시간 26일 펼쳐진 동북부경선에서 선두주자들인 트럼프와 클린턴의 질주가 무섭게 이어졌습니다.
공화당 트럼프 후보는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코네티컷, 델라웨어, 로드아일랜드 등 5개 주에서 열린 당내 경선에서 5곳 모두 압도적인 표 차로 완승을 거두며 최소 988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후보지명 8분 능선에 도달했습니다(과반 대의원 수 1237명). 남은 10개 주의 경선 결과에 따라 7월 전당대회 전에 과반 대의원을 채울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한편 민주당 클린턴 후보역시 로드아일랜드를 제외한 4개 주에서 승리해 버니 샌더스 후보를 훌쩍 따돌렸습니다. 이로써 최소 2168명의 대의원을 얻어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2383명)의 91%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11월 본선에서 트럼프와 클린턴의 양자대결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26일 동북부 5개주를 모두 휩쓸었습니다. 특히 ‘크루즈-케이식 연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압승 행진이 이어지면서 트럼프는 매직넘버 달성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달 3일 열리는 인디애나주 경선이 반트럼프 진영으로선 사실상 트럼프를 저지할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뉴욕주 대승에 이어 이날 트럼프는 펜실베니아주, 메릴랜드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 델라웨어주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날 경선이 치러진 5개주에는 대의원 172명이 걸려있습니다. 이 가운데 펜실베니아주는 대의원 71명 중 1위가 17명을 차지하고, 나머지 54명은 오는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습니다.
AP통신은 “크루즈와 케이식이 연대를 맺었지만, 이날 북동부주에서 크게 승리한 트럼프의 매직넘버(대의원 과반) 달성을 저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경선 전까지 트럼프는 대의원 844명, 크루즈는 543명, 케이식은 148명을 확보했습니다. 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237명을 확보하면 자력으로 후보 지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 언론들은 오는 5월 3일 열리는 인디애나주 경선은 트럼프의 매직넘버 확보를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인디애나주에는 대의원 57명이 걸려있습니다. 이 가운데 1위 후보에게 30명이 배정되고, 나머지 27명은 9개 선거구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8~22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인디애나주에서 트럼프는 39.3%, 크루즈는 33%, 존 케이식은 19.3%를 기록했습니다. 공화당 후보들은 이미 인디애나주에서 막대한 선거 자금을 쏟아 부으며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습니다. 크루즈는 26일 경선이 끝나기도 전에 인디애나주로 향했을 정도입니다.
트럼프는 80만달러(약 9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인디애나주에서 TV 및 라디오 광고에 썼습니다. 반 트럼프 슈퍼팩 역시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인디애나주에서 사용했습니다. 크루즈를 지지하는 슈퍼팩도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의 매직넘버 확보를 막기 위한 크루즈-케이식 연대가 효과를 거둘지 여부도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입니다. 지난 24일 두 사람은 인디애나주를 크루즈가 맡고, 오리건와 뉴멕시코주를 케이식이 맡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케이식은 “내 지지자들에게 크루즈를 찍으라고 한 적 없다”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매직넘버를 달성하지 못해 경선 레이스가 오는 6월 7일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하다고 전했습니다. 6월 7일 열리는 캘리포니아주 경선에는 대의원 172명이 걸려있습니다.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21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캘리포니아주에서 트럼프는 45.7%, 크루즈는 28.3%, 케이식은 18%를 기록 중입니다.
한편 이날 NBC뉴스에 따르면 트럼프의 전국 지지율이 지난해 말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었습니다. 지난 3월 18~24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50%를 기록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가운데 줄곧 선두를 달려왔지만 지지율 50%의 벽은 넘지 못했습니다. NBC는 “트럼프가 뉴욕주에서 압승한데 이어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은 공화당이 트럼프로 통합되는 조짐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의 쐐기를 박았습니다. 26일 열린 동북부 5개주 경선에서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메릴랜드와 델라웨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특히 대의원 210명이 걸린 대형주인 펜실이니아에서도 무난히 승리하면서 이번 경선은 사실상 힐러리의 완승으로 끝난 모습니다.
이에 따라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번 경선으로 ‘매직넘버’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변이 없으면 경쟁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의 격차를 다시 한 번 크게 벌리며 경선 승부를 사실상 마무리 짓게 됩니다.
미 언론은 이번 경선에서 힐러리가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인 대의원 과반인 2383명의 9부 능선에 근접하면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5개 주 경선에는 462명의 대의원이 걸려 있습니다.
힐러리의 성공 뒤에는 힘 있는 지지자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월가는 힐러리의 주요 지지층입니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슈퍼팩이 지난해 하반기에 모은 2500만 달러 중 1500만 달러는 월가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700만 달러 이상을 냈습니다.
할리우드 등 문화계도 힐러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배우, 가수 등 유명세가 높은 인물과 사업가 등 재력가들의 지원 공세가 잇따랐습니다. 로이터통신의 선거 자금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선거 캠페인과 힐러리 지지 슈퍼팩이 배우와 영화계 임직원, TV와 음악 업계로부터 기부 받은 자금은 최소 840만 달러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샌더스 진영이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부터 받은 자금이 100만달러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열렬한 지지와 함께 후보 지명에 다가선 힐러리의 초점은 이제 경선이 아닌 대선입니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이번 경선에 앞서 “클린턴 전 장관은 샌더스와의 레이스에 지쳐있으며 이제 초점을 공화당과 대선 본선으로 옮기고 싶어한다”며 “26일 경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면 드디어 그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대선 승리 이후 내각 구성의 방향도 일부 제시했습니다. 힐러리는 25일 MSNBC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각료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그는 “나는 미국을 반영하는 내각을 만들 것이다. 미국의 절반은 여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힐러리의 기세에도 샌더스 의원은 완주 의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습니다. 26일 샌더스는 ABC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며 “필라델피아 전당대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대의원을 확보할 것이며, 우리가 승리를 향한 길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와 클린턴은 26일 경선 승리 후 상대방을 겨냥해 치열한 11월 본선 대결을 예고했습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내가 사실상 대선 후보다. 힐러리가 남자였다면 득표율이 5%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핵무기는 가장 큰 위협이며 김정은이 더이상 나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압박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턴도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사랑이 증오를 트럼프하는(love trumps hate) 미국을 만들자”고 역설했습니다. 트럼프의 이름이 동사로 ‘이기다’라는 뜻을 이용한 선거 구호입니다.
미 현지 언론에선 벌써부터 트럼프와 클린턴의 본선 대결을 가정하며 여러 변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정치전문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3월 29일∼4월 24일 6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 두 사람이 본선에서 붙으면 클린턴(49%)이 트럼프(40.5%)를 8.5%포인트 차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가 이날 경선에서 5개 주를 싹쓸이한 데서 볼 수 있듯이 평소에는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다가 투표장에 가서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지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트럼프 지지 패턴을 감안해 본선을 전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찰스 머리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위원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극소수의 기성 정치권과 언론들이 자기들만의 틀에 갇혀 정작 미 전역에서 불고 있는 트럼프 돌풍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현재 나타난 여론조사 수치로는 트럼프 현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인 것입니다.
11월 본선에서 트럼프와 클린턴 두 사람이 각각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로 격돌하게 된다면 역대 미국 대선사상 가장 비호감도 높은 후보간 대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트럼프가 당내 경쟁자들인 크루즈와 케이식 후보에 비해 압도적 지지율로 선두를 질주하고는 있으나 그에 비례해 반감을 가진 유권자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힐러리 역시 중도적 성향과 월가 등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로 인해 진보진영에서 그다지 탐탐치 않게 보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클린턴이 여성후보임에도 여성 유권자들 중 비호감 수치가 절반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점이 본선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할 이유는 여성들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클린턴보다도 높은 70%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사실 이번 대선은 공화·민주 양당에서 평균이상의 어지간한 후보만 나온다면 이들을 상대해야하는 트럼프와 클린턴 두 사람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힘든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대선승리확률이 높아진 클린턴이라면 역으로 클린턴이 상대후보이기에 트럼프의 승리확률이 그나마 높아진다는 묘한 방정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과연 12월 미 대선이 두 사람의 대결로 결과 지어질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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