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TV 수목 드라마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가 시청률 고공행진중인 가운데,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6일 밤 방송된 '태후'는 전국 시청률 33.5%를 기록했습니다. 가히 신드롬적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반증하듯 ‘태후’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류 컨텐츠의 성공사례로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언급할 정도였고 주연배우 송중기는 연예인으로선 사상 처음으로 KBS ‘9시 뉴스’에 출연하기까지 했습니다.
‘태양의 후예’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가상의 국가 우르크에서 군인과 의사의 사랑과 감동적인 인간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송중기와 송혜교가 출연하고, 로맨틱 코미디 대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집필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비밀’ 이응복 PD가 연출을 책임지며 ‘드림팀(?)’이 완성됐고, 첫 방송부터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입니다. 출연 중인 배우들이 현재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매일 관련 기사들이 쏟아질 정도로 인기 광풍을 겪는 중입니다.
인터넷 다시 보기 형태가 자리 잡은 요즘, 평일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가 20%의 시청률을 넘기기란 하늘에서 별따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후’는 첫 방송에서 14.3%를 기록하더니, 3회 만에 20%의 벽을 넘었습니다. 이후 9회 만에 30%대를 돌파했고, 결국 6일 방송된 13회는 33%의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순간 시청률은 이미 40%를 넘어선 회 차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만 되면 TV 혹은 인터넷 시청을 위해 모인다는 이유로 ‘태양의 시계’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풍적 인기 속에 방송중인 ‘태후’를 대하는 남녀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남녀를 구분짓자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반응이 다르긴 다른듯 합니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태후’에 푹 빠진 여성들과 손발이 오그라들어 보기 힘들다는 남성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인데요... 세 사람만 모이면 '태후' 얘기에 정신없지만 남자들은 뒤로 쓱 빠집니다. 물론 10대나 40대 이상의 중년도 있지만 '태후'를 보는 주 시청 층은 2030 여성들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남성들은 “어디서 공감해야할지 모르겠다. 군대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도 너무 판타지스럽다. 물론 드라마지만 억지 상황이 많아 웃겼다"고 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출근길에 본방으로 본 '태후'를 재방으로 또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동료들과 '태후' 얘기로 꽃을 피운다. 그 정도로 현재 삶의 낙이다"고 했습니다.
손가락 쫙 편 상태로는 '태후'를 못 보겠다는 남성과 '태후' 없인 살 수 없다는 여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왜 남녀의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남성들의 입장에서 손발 오글거리는 ‘태후’를 들여다봤습니다.
모처럼 시청률 30%를 넘기는 대형 트렌디 드라마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시청자들, 특히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칩니다. 대사가 좋고, 달달한 것은 알겠지만 이 드라마가 과연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웰메이드한 드라마냐는 데서 갸우뚱하는 것입니다. 모든 게 배우 송중기와 김은숙 작가가 빚어낸 ‘판타지’의 힘이라며 판독불가의 결론을 내립니다.
유시진 대위(송중기)와 그의 부대를 곤혹스럽게 바라보는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자면,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현실성에 대한 성토로 시작해 고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가 될 것입니다. 괜한 트집이 아닙니다. 실제 130억 단위의 거액이 투입된 사전 제작 드라마로소 설득력을 갖기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수작전 중 헤드라이트를 켜고 들어가고, 군이 그토록 사수하려는 ‘전작권’은 드라마 속에서 무시하고 델타포스팀과 쌈박질을 합니다. 총성이 요란한 사격훈련 중에 교관이 어록을 설파하고, 대위가 헬기를 타고 다닙니다. 심지어 특수부대에 비비탄 탄창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짐작컨대, 이 부분은 어쩌면 실제 우리 군에 만연한 군납비리를 고증한 고도의 센스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군대 다녀왔다고, 아는 척하자는 게 아닙니다. 야전에서 생활하는 하얀 피부의 군 특전사 대위라든가, 부사관 중심의 특전부대에서 국방부에서 금지한 ‘다나까’체와 압존법을 구사하는 일반 사병 말투를 쓰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배경이 되는 군대의 특수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그 어떤 전문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은 조직과 문화입니다.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설정인 재벌 기업 본사가 시청자 중 극소수만이 아는 세상이라면 군대는 훨씬 더 많은 시청자들이 경험을 공유한 조직이자 공간입니다. 그런데 남성 시청자들 입장에선 설익고 미화된 군대 위에 비교적 익숙지 않은 순정만화의 로맨스물이 펼쳐지고, 거기에 애국충정 코드까지 입혀져 있으니, 현실성 차원에서 몰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태양의 후예’의 뜨거운 열풍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습니다. ‘태후’는 박근혜 대통령이 훈시 말씀을 할 만큼 군과 애국에 관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군이 아니라 로맨스에 방점이 찍힌 달콤한 순정만화인 것입니다. 1996년에 나왔어도, 2006년에 나왔어도 성공했을 드라마가 2016년에 성공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김은숙 작가가 다시 한 번 펼쳐 보인 것입니다.
순정만화에는 익숙한 공식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백마 탄 왕자가 짠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신비롭습니다. 능력도 출중하고 위트와 외모를 포함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밀이 많습니다. 이런 지점이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여자를 위해선 인생과 목숨을 걸고 단신으로 중무장한 갱단의 소굴에 잠입해, 총 앞에 몸을 던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지만, 오히려 감싸주고 싶게 만듭니다. 또 그의 옆에는 듬직하고 우직하게 한 여자를 사랑해주는 순애보를 지닌 또 다른 매력남이 등장합니다. 모든 걸 갖췄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서브 여주인공과 예쁜데 자기만 애써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랑스럽고 애교만점인 긍정적 에너지를 품은 여주인공이 어우러집니다.
관계와 배경도 재벌 기업에서 군부대로, 실장, 본부장 등의 직책이 대위, 상사, 중위 등 계급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구성입니다. 사랑의 장벽이 되는 신분의 갈등은 계급체계로 반복됩니다. 이런 순정만화식의 커플 구도 속에 김은숙 작가의 찰진 대사가 관계의 갈등과 위급한 유사시 상황들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타넘으며 알콩달콩 풀어지는 것입니다.
빅보스 유시진 대위는 순정만화의 법칙을 군법처럼 철저하게 따릅니다. 여기서 특수부대는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걱정하게 만드는 절박한 로맨스를 키우는 지렛대가 됩니다. 이른바 전쟁 같은 사랑이고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멀어질까 말까 로맨스의 긴장이 생기고 몰입은 깊어집니다. 심심하면 뜯어서 쥐어주는 인식표는 그 상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재난물, 밀리터리액션, 좀비물, ‘24’류의 액션스릴러 등 여러 장르가 에피소드마다 치고 빠집니다. 순정만화의 뼈대 위에 다양한 볼거리와 파병부대의 색다른 배경을 갖춘 것입니다. 그런 사이, 스나이퍼 건의 레이저빔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조준한 여심 스나이퍼에게 어떤 이들은 표적이 되고, 어떤 시청자들은 총구 방향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입니다.
‘태양의 후예’가 오글거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풍선처럼 부풀린 대사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게 아닙니다. 군이 아닌 다른 배경이었거나, 고증이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면 ‘시크릿가든’이나 ‘파리의 연인’처럼 별다른 이견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인기가 있고, 무엇이 판타지인지 알겠지만 드라마의 서걱거리는 현실감이 서사의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이 아쉬움이 판타지 세상에 입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입니다.
순정만화는 본디, 현실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판타지 로맨스물입니다. 이국적인 공간에 자리한 파병 부대는 일상의 여러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감출 수 있는 훌륭한 도화지가 됩니다. 달달한 드라마를 둘러싼 범아시아권의 이상 열기를 포착한 영국의 BBC는 우리나라에서 군이 갖는 특수한 위치가 성공 원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런 시선으로는 남녀 시청자의 온도차가 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군은 배경일 뿐, 군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태후’의 신드롬은 오래간만에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한 순정만화가 등장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사 메인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고 정치인들이 치켜세우는 게 오글거리고 왠지 모르게 어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워낙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태후’이다 보니 단순히 드라마로만 보이지 않고 하나의 현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성공한 ‘한류’ 컨텐츠로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큰 수익까지 거두고 있으니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같은 곳, 혹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상반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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