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가 방송 전 높았던 기대치에 반해 현재 부진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초 막장코드가 아닌 따뜻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착한 드라마를 지향하며 기대감속에 시작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요?
작가 김수현이 쓰는 드라마는 오랜 시간 늘 현상이 됐고 시대를 읽는 틀이었습니다. 가족의 가치에 발 딛고 선 작품 세계는 당대와 호흡하면서 위로와 공감으로 대중을 감싸 안았습니다. 동시에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시대적 화두를 던져왔습니다. 40년 이상 그가 현재 진행형 드라마작가인 이유입니다.
지난 2월 초 그의 새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가 SBS에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김수현식 서사의 무대였던,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3대가사는 대가족의 틀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익숙함은 식상함에 묻혔고 서사의 내용과 형식은 피로감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호평을 찾기 힘든게 현실입니다. 그가 추구해온 대가족 판타지가 벽에 부딪혔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 시청률을 확보하는 주말 황금 시간대임에도 ‘그래 그런거야’는 동시간대 가장 낮은,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러 있습니다.
1인 가구 600만 시대. 3대 대가족이 한 울타리에 모여 사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판타지 안에선 더 믿기 힘든 일이 펼쳐집니다. 일요일마다 전 가족이 집합해 점심을 먹고 그 식탁을 뚝딱 차려내는 것은 전적으로 환갑을 맞은 며느리 한 명의 몫입니다. 처 증조부의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주사위는 뒷말을 들어야 하고,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은 며느리는 5년째 시아버지를 모시고 같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식구들이 꾸려가는 서사의 상당 부분이 삼시세끼 뭘 먹을까이다 보니 중년 여자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은 부엌 아니면 식탁이 고작입니다. 이모할머니 새끼발가락에 티눈 박힌 것까지 공유해야 하는 가족 간의 묵계에 이르면 공포스러워 지기까지 합니다. 사라져가는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희구하는 데 따른 장치로 볼 수 있지만 이쯤 되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도합니다. 작가와 제작진은 막장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힐링이 되는 드라마임을 홍보했지만 30대 이상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 같은 설정이 더 막장스럽다”는 역설적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는 형편입니다.
3대가 등장하는 만큼 세대 간 갈등은 불가피한 소재입니다. 작가는 전작에서 동성애 등의 문제들을 전향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에서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거론하는 방식은 다소 불편하다는 지적입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손자 세준(정해인)의 취업문제입니다. 세준은 20대도 희망퇴직을 권고 받는 세상에서 톱니바퀴의 부품처럼 사는 대신 자신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스물여덟이 되도록 정신 못 차린 철부지의 그것으로 치부되고 맙니다. 부모는 물론 동년배인 형과 누나까지 “누가 대기업 들어가라고 했냐”며 “열심히 노력하라”고 다그칩니다. 실업대책을 마련하라는 청년들의 요구에 “눈높이를 낮추라”던 현실 기득권층의 대응이 드라마에서도 강요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나마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가 나서면서 표면적인 갈등은 일단락됩니다. 문제는 세준과 같은 청년층이 처한 상황 인식과 공감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관용과 지혜가 그 비결이라고 부각된다는 점입니다.
김수현 작가를 ‘언어의 연금술사’로 부르는 것은 촌철살인 비유가 넘쳐나는 특유의 대사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의 향연은 김수현 드라마의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드라마에선 이 같은 대화방식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반응이 많습니다. ‘어깨가 아프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도 “한쪽에는 강호동이, 한쪽에는 김준현이 앉은 것 같다”는 식으로 비유하고 비트는 것이 과도하게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평론가들은 “김수현 작가는 항상 시대적 상황보다 반발 앞서왔지만 이번엔 새로운 설정과 시도가 호응과 공감 대신 비일상적인 방향으로 가면서 흡인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합니다. 또 “언어유희에 가까운 관념적 비유법은 시청자들에게 강박심리로 비치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시작 전 제작진은 ‘그래, 그런거야’는 3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과 의미를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릴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한류급 스타들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복수를 한다는 식의 자극적인 요소도 없습니다. 달달한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 그런거야'에는 오로지 가족과 공감만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이순재, 강부자, 김해숙, 노주현, 송승환, 홍요섭, 임예진, 그리고 양희경 등 '김수현 사단'들이 총출동하며 과거 화려했던 김수현표 드라마의 시청률을 재현해 낼거라 자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와 드라마가 마주한 현실은 기대에 한 참 못 미치는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김수현 드라마의 한계일까요? 그동안 '그래, 그런거야'가 방송되는 주말에는 소위 말해 '막장 드라마'가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살인이나 복수 등 자극적인 소재와 개연성 없는 전개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 배우들과 제작진은 이런 막장 드라마 제작이 지양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며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극찬했습니다.
제가 ‘그래, 그런거야’ 방송 시작 무렵 포스팅한 글에서 지난 90년대 김수현 드라마의 전성기 시절엔 분명 그의 드라마가 다소 자극적이란 평도 있었으나, 막장드라마가 활개 치는 작금에선 오히려 착한드라마가 될 정도로 시대와 우리 사회사회가 변한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김수현 작가의 착한드라마가 막장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묘한 감정마저 드는군요! 현재 전체 60부작 중 14부작이 방송된 이 드라마가 제 궤도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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