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요정 걸그룹 S.E.S가 출현해 가요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이들의 독주를 막을 또 하나의 요정 걸그룹이 탄생했으니 바로 핑클입니다. 한때 S.E.S와 걸그룹 미모 양대 산맥을 구축하며 치열한 라이벌 전을 벌였던 핑클은 현재 각자 가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막내였던 성유리는 가수에서 연기자로, 연기자에서 MC로 활동 방향을 넓히며 이제는 어엿한 톱 여배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연예계의 내로라하는 '엄친딸'로 유명한 성유리는 교수였던 아버지와 현재 의사로 재직 중인 오빠를 뒀으며 자신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우등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내 사생대회에서 소위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고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핑클의 막내로 합류, 데뷔 때부터 대박을 터트리며 가요계를 주름잡는 아이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아이돌 전성기는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핑클도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됐고 미모가 남달랐던 성유리는 배우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2002년 SBS '나쁜 여자들'에서 첫 연기에 도전한 성유리는 당시 부족했던 연기력으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주연으로 출연한 SBS '천년지애'에서는 어색한 연기로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라는 유행어만 남긴 채 전 국민의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유리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숱한 연기력 논란에도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MBC '황태자의 첫사랑', MBC '어느 멋진 날', KBS2 '눈의 여왕' 등 다수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점점 다듬어진 연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해보자'라며 도전했던 KBS2 '쾌도 홍길동'에서 명량 쾌활한 허이녹을 실감나게 소화해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유리의 연기력은 안정세를 찾아갔습니다. SBS '태양을 삼켜라'에서는 배우 지성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이수현 역을, KBS2 '로맨스 타운'에서는 로또에 당첨된 가정부 노순금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다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해 아쉬움을 자아냈고 그러던 중 MBC '신들의 만찬'을 만나게 됩니다.
34부작이라는 다소 긴 호흡에서 성유리는 절대미각과 남다른 재주를 지닌 고준영으로 분해 하인주역을 맡은 서현진과 치열한 요리 대결을 펼쳤습니다. 음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당시 '신들의 만찬'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20%에 가까운 성적을 냈고, 성유리는 2012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SBS '출생의 비밀'에서 호연을 펼치며 2013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지만 개인적으론 연기에 대한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성유리는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으로 ‘출생의 비밀’을 꼽았습니다. 그는 “‘출생의 비밀’은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 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대본을 보면서 아이 엄마라는 설정에 격하게 공감했다”며 “실제의 나는 아이가 없지만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선택했다. 그런데 모성애라는 것이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는 표현이 안 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성유리는 “극 중 천재로 설정됐는데 실제로 내가 천재가 아니다 보니까 자꾸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현이 안 될 때마다 작가님께 전화해서 여러 차례 여쭤봤다. 작가님이 얘기해주면 당장 그 상황은 연기할 수 있는데 이후에도 계속 모르겠더라. 산 넘어 산이었다. 매일 살과 뼈를 깎아내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정서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현장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까칠해지기도 했다. 그러고는 ‘왜 그랬지’라고 후회했지만 다음날 또 반복이었다”면서 “제일 힘들었던 작품이지만 동시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청률은 많이 안 나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성유리의 의외의 면을 봤다’고 기억해주는 분들도 있었으니까”라고 회상했습니다.
‘출생의 비밀’ 종영 이후 성유리는 2년 동안 작품을 하지 못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차기작을 선택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배우로서 힘든 시간을 겪던 성유리는 당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던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뜻밖의 입담을 뽐내기 시작합니다. 과거 MBC '섹션tv연예통신'에서 이미 MC의 경험을 쌓은 그는 '힐링캠프'에서도 안방마님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2013 SBS 연예대상 여자 우수상, 2014 SBS 연예대상 TV부문 프로듀서상을 연속으로 수상했습니다.
초반 연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당히 톱 여배우의 반열에 오른 성유리. 가요와 드라마, 방송을 넘나드는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에서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입니다. '토끼와 리저드', '차형사', '누나'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던 그는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감독 전윤수)를 통해 오랜만에 배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개봉을 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생애 가장 빛나는 고백을 하는 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성유리는 극중 톱스타 서정으로 분해 배우 지진희, 김성균, 김영철 등의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기대에 크게 못 미쳤고, 그저 앞으로의 연기 활동에 대한 워밍업 정도였다 자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성유리가 올봄 브라운관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2013년 드라마 ‘출생의 비밀’ 이후 3년 만입니다. 성유리는 MBC ‘화려한 유혹’ 후속으로 3월 28일 첫 방송을 앞둔 새 월화 드라마 ‘몬스터’에서 여자 주인공 차수연 역을 맡았습니다. 성유리에게 이 작품은 컴백 그 이상의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몬스터’는 성유리가 2008년 드라마 ‘쾌도 홍길동’과 2012년 영화 ‘차형사’에 이어 강지환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작품입니다. 더욱이 그가 전작 ‘출생의 비밀’후 장고 끝에 선택한 드라마기 때문입니다.
'몬스터'의 첫 방송 날짜인 28일엔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동시에 월화드라마가 출격합니다. SBS '대박',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 MBC '몬스터'. 방송 3사가 동시에 시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3사 중 누가 먼저 웃을 수 있을지 역시 초미의 관심사라 할 것입니다. 경쟁에 중심에 서있는 배우 성유리는 "방송 3사가 동시에 첫 방송을 한다는게 이례적인 일이라 긴장이 된다. 16부작이 몇 번 바뀌어도 우리 드라마는 계속 하기 때문에 초반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님들이 필력이 좋으시니 마음을 비우고 있다. 전작이 잘돼서 아주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어렵게 드라마 출연을 결정했으나 동시에 공중파 3사가 새 드라마를 시작하는 이례적 상황으로 드라마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이돌 출신이란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이기고 어엿한 배우로서 입지를 구축한 그이기에 자신의 말대로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부여 공주'에서 '드라마 퀸'으로 거듭난 성유리의 의미 있는 연기 도전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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