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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필리버스터 종료, 예정된 실패였나?

Chris7 2016. 3. 3. 08:01
국회에서 야권이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수정을 위해 47년 만에 부활시킨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가 9일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심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필리버스터 중단 방침을 정했습니다. 연장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반발로 1일 의원총회까지 열었지만 ‘선거구획정 지연에 따른 역풍’을 우려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설득에 결국 종결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3월2일 종료 시점까지 필리버스터는 192시간 진행됐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 이어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가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이로써 이번 필리버스터에는 김광진 의원에서 이 원내대표까지 모두 39명의 야당 의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한 지난 23일 오후 7시6분부터 더민주 김광진 의원의 무제한 토론으로 시작됐습니다. 김 의원이 5시간34분으로 1964년 김대중 대통령의 본회의 필리버스터 기록을 경신한 이후 3번째 주자였던 같은당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이라는 새 기록을 세웠고 “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눈물의 발언으로 여론의 관심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17번째 주자로 나선 같은당 정청래 의원은 11시간39분으로 은 의원의 기록을 다시 넘어섰습니다.


8번째 주자 신경민 의원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조목조목 지적한 이른바 ‘사이다 필리버스터’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습니다. 신 의원이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공약“이라고 밝히자 이를 확인하려는 네티즌들이 폭주해 새누리당 홈페이지가 접속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9번째 강기정 의원은 사실상 공천배제된 직후 연단에 올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을 쏟아 연민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필리버스터 기간 동안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필리버스터를 하는 의원들의 이름이 속속 오르고 일부 의원들에게는 정치후원금이 답지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필리버스터를 직접 보기 위한 시민과 학생 등 참관이 줄을 이었습니다.


여의도 밖에서는 존재 자체가 희미했던 국회방송은 시청률이 20배나 급등하며 대박을 쳤고 국회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의 접속자 수도 하루 평균 6천 건에서 1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50대 아래로는 난생 처음으로 체험하는 필리버스터로 의원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SNS를 통해 실시간 전파되는 ‘참여와 공유의 정치’가 구현됐습니다.


영국 더타임스는 '상상력이 빈곤한' 다른 나라 의원들과 달리 한국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공동체적 성과를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마디로 2016년을 영원히 기억에 각인시킨 정치사적 사건이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필리버스터는 끝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더민주의 ‘궁여지책’이었습니다.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으로 더민주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국회법 106조 2항은 다수의 독주를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의 실시를 규정하면서 동시에 3가지 종결 조건도 명시해놓았습니다. 재적의원 3분의1이상이 제출한 종결동의가 재적의원 5분의3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되거나 토론할 의원이 더 이상 없거나 회기가 종료되는 경우 입니다.


새누리당 의원이 5분의3인 180명에 미치지 못하므로 종결동의는 불가능하고 토론할 의원은 충분했지만 이번 임시국회는 3월10일이면 끝납니다. 다음 임시국회에선 곧바로 테러방지법을 표결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 관심 환기와 야당 지지층 결집 등의 효과는 있었지만, 어차피 필리버스터의 수명은 최장 3월10일까지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4.13 총선을 예정대로 치르기 위해선 남은 일정 상 29일까지는 선거구획정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28일 선거구획정위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더민주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수정을 위해 필리버스터를 3월10일까지 끌고간다해도 표결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칫 선거를 지연시켰다는 비난만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던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 협상 자체를 거부했고 법사위 계류 법안들과 북한인권법, 사어비테러방지법 처리를 협상 전제조건으로 끼워넣으며 배짱을 부렸습니다. 더민주는 북한인권법과 무쟁점 법안을 법사위에서 처리하며 겨우 협상을 재개하고 통신제한조치 요건에 '국가안전보장에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를 추가한 국회의장 중재안 수용을 요구했지만 당연히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습니다.


결국 더민주는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테러방지법과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은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습니다. 실패가 예정됐던 일과성 헛수고로 남을지, ‘참여와 소통정치’의 시작으로 기억될 것인지, 포스트 필리버스터에 주목해야할 이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