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영화 ‘도리화가’ 수지 앞에 놓인 험난한 배우의 길

Chris7 2015. 12. 6. 13:30

걸그룹 미쓰에이의 멤버이자 연기자의 길도 병행하고 있는 수지 (배수지)주연의 영화 '도리화가'가 예상에 못 미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6일 오전까지 224개 스크린에서 470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관객 수 29만6472명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손익분기점인 260만 관객 수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도리화가'가 여전히 200여 개를 상회하는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긴 하나 결과를 속단하기에 결코 이르지 않습니다. 개봉 2주차 주말이 되기도 전에 다수 관객들의 표심을 사로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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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개봉한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수지)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현재 '도리화가'와 관련한 관객 평을 살펴보면 수지에 대한 혹평이 대다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만듦새와 완성도를 논외로 삼고, 여류 명창 진채선 역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혹평부터 쏟아졌습니다. 이는 배우의 자질 문제로 전이됩니다. 사실 '도리화가'의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는 배우에게는 매력적인 배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무로에서 여배우가 주목받을 수 있을 만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리화가' 작업은 꽤나 흥미로 왔을 것입니다. 금기를 깨는 역사적인 여성의 탄생은 관객들에게 역시 흥미로운 서사이기도 했습니다. 20대 대세 연기자로 수지를 꼽는 데 영화계와 방송계에는 이견이 없었을 것이기에 그는 영화 전면에 나서는 주연으로 발탁됐습니다. 흥행 배우 류승룡과의 조합에 불안정한 연기력이라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결정했을 것으로 풀이됩니다. 연기력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만큼 수지라는 연기자만이 갖고 있는 상품 가치와 아우라 등의 자산은 높게 평가됐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리화가'는 영화 '건축학개론'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수지에게 일종의 시험대였습니다. 과연 영화를 이끌 충분한 기량이 발휘될 수 있는지, 그의 영화 감상을 위해 관객들이 지갑을 열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계기가 될 것도 자명했습니다. 여전히 국민 첫사랑으로 회자될 것인지, 잠재력이 있는 배우로 성장할 것인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또 수지가 비교적 최근 출연작인 지난 2013년 방송된 MBC 드라마 '구가의 서' 이후 연기력을 얼마나 개선시켰을지도 관심사였습니다. 대대적으로 연기력 논란에 대해서 크게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었으나 당시에는 연기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을 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자는 여론이 분명히 형성돼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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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론시사회 이후 객관성을 상실한 평들은 외려 반감을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은 판소리를 1년 배운 것으로 명창을 흉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선적으로 연기자답지 않은 불안정한 발성부터가 보는 이들을 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판소리를 선보이는 장면에서 역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시사회 당시 판소리에 현악 OST를 삽입한 이유에 대해 묻는 질문이 있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생 목소리의 판소리를 감출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수지의 판소리를 두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니 괴리감이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사실 수지는 최근 '도리화가'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와 도전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도전에 대해 후회가 없어야 했던 것은 맞지만 연기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말은 다소 경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선배 배우들 역시 매번 자신의 연기에 대해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는 행위는 완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지의 선배 배우들이 자신의 출연작을 보며 얼굴이 화끈 거린다거나 부끄러워 재감상하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또한 프로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언론과 평단에서 호평을 하더라도 제 눈에 못 미치는 연기력을 발견하고 이를 인정하는 순간 배우는 더 성장하게 된다, 배우고 배워서 배우가 된다는 말은 이때 통용됩니다.

 

그리고 캐릭터의 이입 방법에서 조차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진채선을 연기하기 위해 굳이 많은 자료를 탐색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그것이 "감정 잡기가 애매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자 만의 캐릭터 접근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연습생 시절만을 대입한 것은 다소 안일했다 봅니다.  그 당시 느꼈던 좌절감, 무력감 등을 떠올리며 연기에 대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능적으로 유사한 감정을 분출하는 것만으로는 진채선이 될 수 없었습니다. 득음을 하기 위해 극한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소리를 내지른다고 진채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기의 과정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고,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영화의 콘텍스트를 통해 관객이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목표를 가진 배우의 마인드,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듯 드러내는 배우는 관객들에게 외면받기 쉽습니다. 관객들이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을 기다려줄 의무는 당연히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다수의 관객들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한 잣대는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성찰을 해봐야 할 때입니다. 어떤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 그냥 이런 모습도 있구나?"라며 의외의 면면에 집중해주길 바란다는 답을 내놓기보다 자신이 대중에게 먼저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분명한 목적부터 상정하고, 이를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또 이는 곧 자신에게 주어진 작품과 평가 기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입니다. 배우고 배워서 배우가 되는 것은 맞지만, 무엇을 배우고 배워서 어떤 배우가 되려 하는지에 따라 다른 배우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10시간 동안 폭우를 맞으며 소리를 지른 도전은 갸륵하지만, 오롯이 진채선을 보여주지 못한 만큼 대세에서 배우가 됐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도리화가'는 KBS2 새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촬영을 시작한 수지에게 어떤 배움을 안겼을까요? 노력만으로 칭찬을 하기엔 결과가 꽤나 참혹합니다. 비싸도 너무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수지에겐 배우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배우로서 내면을 채우고 실용적인 연기를 위한 인풋보다도 자질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