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양분된 여론

Chris7 2015. 10. 24. 12:10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시간이 갈수록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격화되는 형국입니다. 국민들의 여론도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가들도 입장과 처지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달라 일반 국민들로서는 어느 쪽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쉽게 가늠하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에서 원로학자들을 초청해 가진 ‘올바른 역사교육, 원로에게 듣는다’는 주제의 간담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국정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습니다.

 


‘역사 교과서 전쟁’ 돌입한 여야 내년 총선 셈법은… 내분 봉합하고 지지층 모으고 결국 票싸움 기사의 사진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재의 역사교과서를 독극물에 비유해 “학생들이 독극물을 계속 받아 마셔야 할 상황인데도 학생들은 이를 거부할 권리와 힘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정화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덜 나쁜 방법이지만 현행 검.인정 체제 하에서는 좌편향된 필진 탓에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 수 없어 덜 나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정화에 대한 일반의 거부감을 이해한다”면서도 “검.인정 체제로 하면 좋은 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검.인정 체제가 그럴 듯하지만 검정 기준에 문제가 많아 시간이 갈수록 좌편향이 심화됐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2017년부터 학교현장에 보급하겠다고 밝힌 국정 역사교과서의 이름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입니다. 현행 검정교과서의 집필진과 내용, 서술방식 등이 ‘올바르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이 같은 인식을 ‘좌편향’이란 단어로 정리해 국정화 홍보 문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인정제와 자유발행제를 추구하는 세계적 흐름과 다수의 역사학자, 교사, 학생들의 반대를 거스를 정도로 현재의 역사 교과서들이 편향적인지 그 진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좌편향’이란 정부ㆍ여당의 결론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일보에 보도된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이 2013년 9월30일 작성한 ‘한국사 교과서 8종 비교-12항목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극도의 편향성으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근거가 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두고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이 논란이 됐지만,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근대 및 산업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8종 교과서가 공히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가 재건에 기반이 됐다는 점도 공통으로 언급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개헌을 하고 친일 인사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켰다는 서술 역시 대동소이 했습니다.

 

 

여권에서 분량과 표현이 다소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일제시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 위안부, 박정희 유신통치 관련 서술 역시 그간 역사학계에서 통설로 자리잡은 수준이었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당시 일제에 맞섰던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폄훼할 수 없을뿐더러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유신 시절 좌익으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된 지식인들의 존재 모두 사실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여연의 이 보고서는 최근 논란의 핵심인 건국일 문제나 한국전쟁 발발 원인 등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목에선 과연 이런 정도의 문제로 나라가 둘로 나누어 싸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것은 앞서 국회 간담회에서 원로학자가 밝혔듯이 분명 최선의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정권의 필요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개연성도 다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검.인정 체제에선 출판사가 집필진을 뽑기 때문에 장사하기 편한 사람이나 좌편향의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지적도 있어 왔습니다. 때문에 다양성을 이유로 들지만 실제로는 한쪽으로 획일화됐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올바른 민주사회는 자유와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고 다양성도 사회가 허용하는 객관적인 틀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국정화’ 논란이 불거진 것은 현행 교과서 체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회엔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물론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 경제활성화법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습니다. 선거구 획정 등 정치개혁 일정도 순탄치가 않은 실정입니다. 역사 교과서가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국정의 블랙홀이 돼선 안 됩니다. 기왕 ‘국정화’가 결정되었다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국정화’의 이유와 원칙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아직 ‘국정화 교과서’를 집필도 하지 않았는데 친일미화니 역사왜곡이니 예단하는 것도 성급한 일입니다. 정치권도 이해득실에 따라 계속해서 ‘국정화’ 찬반으로 여론을 분열시키는 행태를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와 민심을 제대로 바라 볼 ‘올바른 시각’이 절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