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선은 앞으로 2년 이상 남았습니다. 지금 대선 후보를 점치는 것은 시기상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생리상 대선 주자는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할 것입니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만도 야야 합해 10여명을 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현재 김무성 대표가 단연 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경환 부총리가 당에 복귀하면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유승민 의원도 잠재적 후보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측이 미는 제3의 후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야당에도 고만고만한 인물이 수두룩합니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박 시장과 문 대표는 지지도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9월 3주차 리얼미터의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1.0%로 1위를 달렸습니다. 2위 문재인 대표와의 격차를 3.5%포인트로 벌리며 14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문 대표는 17.5%를 기록했는데, 반면 박 시장은 12.8%로 3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광주.전라(22.2%)에서 문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넣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 이틀간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반 총장은 28.5%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16.6%로 2위, 박원순 시장이 15.1%로 3위, 문재인 대표가 13.0%로 4위를 기록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6.0%로 5위를 차지했고, 유승민 의원 5.1%, 오세훈 전 시장 3.1%, 최경환 경제부총리 3.0%, 김문수 전 지사 2.6%, 천정배 무소속 의원 1.0% 등의 순이었습니다.
여야 모두 '반기문 신드롬'을 다시 한 번 걱정할 판입니다. 반 총장의 행보를 심상치 않게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한 데 이어 지난 9월 3일 중국 열병식에도 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되받아치는 강단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마무리된 유엔총회에서도 박 대통령과 공식.비공식으로 7차례나 만났습니다. 국내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은 물론입니다. 실제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유엔 방문을 통해 더욱 상승했습니다. 때마침 친박 의원들의 ‘김무성 흔들기’ ‘친박 후보론’ 등과 맞물려 그 상승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커졌던 것입니다.
국내 정치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갈등, 선거구 획정 난항 등의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해외 주요국 정상들과 악수하는 사진이 계속 보도되면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후 한 때 꺼지는듯하던 반기문 총장의 ‘대망론’이 또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3지대 후보가 성공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박찬종 변호사를 시작으로, 1992년의 정주영(국민당), 1997년 이인제(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창조한국당), 그리고 2012년 안철수(무소속) 등 대선정국 때마다 어김없이 제3지대 후보가 나왔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거대 양당구도가 고착된 한국 정치 지형상 성공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반기문 신드롬'이 실질적 ‘대망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라 해야 할 것 입니다.
사실 스펙으로 치자면 반기문 총장과 견줄만한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에 올라 언행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는, 우리가 일찍이 가져보지 못한 세계 지도자급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정권(YS)에서 청와대 수석, 진보정권(노무현)에서 각료를 거친 경력도 돋보이는 부문입니다. 이념과 정파적 편향성 시비에서도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케케묵은 영호남 대립구도를 벗어난 충청도 출신인 것도 좋은 조건입니다. 적극적 지지까지는 몰라도, 괜한 반감을 가질 요소는 그다지 없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마다 그가 지역, 계층, 세대별로 고르게 지지를 받는 이유입니다. 성향 다른 정권에서 어느 쪽으로부터도 별 흠집을 잡히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화합, 소통 등의 덕목은 갖췄다고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차기 정권은 통일시대를 여는 책임을 지게 되리라는 점에서 시대적 요청과도 맞아 떨어집니다. 한반도에 중대한 상황변화가 일어날 경우 그의 국제적 안목과 위기관리 경험, 각국 지도자들과의 남다른 인맥과 유대의 깊이 등은 더할 나위 없는 국가적 자산으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반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관리ㆍ조정 능력이 떨어져 별 존재감이 없다거나, 지나치게 미국의 이해에 경도돼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이해당사국 등의 불편한 시각이 태반이거니와, 어차피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유엔의 역할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보면 크게 괘념할만한 비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핵심은 자격론이 아니라, 대권의 현실적 가능성입니다.
‘대망론’이 현재로선 실체가 약한건 맞습니다. 비현실정치인에 대한 증폭된 기대일 뿐이어서 현실과 접촉하는 순간 허상은 사라지기 십상입니다. 성완종과의 인연설 정도로도 꺾일 수 있을 만큼 허약한 게 그 실상인 것입니다. 반기문 총장 역시 진흙탕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대망론’은 한 순간에 꺼질수도 있을 것이라 보는 이유입니다.
지난 대선 전 안철수 교수의 경우처럼 현실정치에 대한 극도의 혐오 속에서 백마 탄 왕자처럼 기대를 모았지만, 그는 애당초 진흙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아가 진흙을 묻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중이 원하던 안철수가 아니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설은 반기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의 ‘대망론’이 아직은 일부의 희망사항인 이유입니다.
2년 뒤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이 되려면 세가지 허들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출마를 결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온갖 공격을 버티면서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히 본선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마도 반총장으로선 세번째 허들이 가장 넘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출마를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합니다. ‘위인전’에 실릴 정도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그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비정치인이 정치권으로 불려 들어가서 기성 정치인을 꺾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결단을 망설이게 할 것입니다. 어렵사리 출마를 결단하면 그때부터 정치가 얼마나 살벌하고 혹독한 정글인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버티기 쉽지 않을 것 입니다. 지금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희망과 전망이 뒤섞여 쏟아져 나오지만 임기가 끝나는 1년 뒤까지도 이런 상황이 유지될 것인가는 알 수 없습니다.
반기문 총장의 임기는 대선을 꼬박 1년 앞둔 2016년 12월에 끝나게 됩니다. 만약 반 총장이 외국에 머물지 않고 한국에 돌아오면 정치판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칠 것입니다. 그가 대선 불출마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하나의 변수입니다. 어찌 되었던 이제 반기문이라는 이름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변수’가 아니라 점차 ‘상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기 대선에서 누가 후보가 될지는 내년 총선이 지나면서부터 윤곽이 잡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총선이 지나면 차기 대선으로 관심이 자연히 모일 수밖에 없고, 반 총장을 향한 정치권의 러브콜이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기문 대망론’이 일부의 희망 섞인 신기루에서 실체가 있는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아직도 최소 1년은 더 설왕설래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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