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제3차 아베내각과 자민당의 파벌

Chris7 2015. 10. 11. 13:34

10월 7일 단행한 개각을 통해 아베총리는 자신의 핵심 정책을 추진하는 부서에 자신의 측근 중의 측근을 투입했습니다. ‘아베노믹스’ 2기의 주요 정책에 힘을 실어 지난달 안보 관련법을 강행 통과시킨 데 따른 지지율 저하를 회복하려는 노림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 우익 인사를 문부과학상에 임명해 우익적 역사관을 반영하는 교육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7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베 3차 내각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아소 다로(75) 재무상(부총리), 스가 요시히데(66) 관방장관 등이 유임됐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기시다 후미오(58) 외무상, 나카타니 겐(57) 방위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아마리 아키라(66) 경제재정재생상 등 다른 주요 각료들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지난달 28일 자신의 독자적인 파벌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으로 ‘포스트 아베’ 쟁탈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시바 시게루(58) 지방창생상도 내각에 남게 됐습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새 중의원 의장에 자신이 속한 ‘마치무라 파벌’의 수장이었던 마치무라 노부타카(70) 전 외무상을 지명했습니다.

 

 

 

아베 총리도 ‘마치무라’라는 파벌에 속해있듯이 일본 정당은 파벌정치로 유명합니다. 파벌이란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당내에 형성되는 의원 집단입니다. 파벌의 기본구조를 보면 파벌의 보스는 소속 의원들에게 정치자금 배분과 선거협력 등을 통하여 소속 의원을 관리하고, 소속 의원들은 파벌 보스가 총재, 총리취임 등 정치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1955년 결성한 이래 진보에서 극우까지의 이념 스펙트럼을 가졌던 과거의 자민당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총재(총리)의 의향만 살피는 해바라기 정당이 되고 있습니다. 다원성이 엷어지고 단색을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베 1강 체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베는 자민당 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일지도 모른다는 평가입니다.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다하라 소이치로는 “자민당 결성 전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 시대에도, 그 후 자민당 총재인 하토야마 이치로(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조부), 다나카 가쿠에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에도 자민당 내에는 반(反)주류·비(非)주류가 존재했다”며 “현재 아베 정권의 자민당에는 반주류파·비주류파가 없다”고 말합니다(인터넷 기고문). 과거에는 주류-반주류·비주류 간 균형이 잡혔고, 여기에는 파벌 정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자민당의 변모는 선거제도 변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파벌 전성시대는 중선거구제였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다 보니 거대 자민당 후보가 복수로 당선됐습니다. 유력한 수권 야당이 없는 상황에서 자민당 영구 집권의 구조였던 것입니다. 반면 자민당 내부에선 치열한 공천 싸움과 정책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각 후보자의 버팀목이 파벌이었던 것입니다. 파벌 총수는 자파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려고 공천 싸움을 벌였고, 소속 후보에게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만년 다수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곧 총리인 내각제에서 수는 곧 힘이었습니다. 파벌 소속 의원은 당정의 요직 확보를 위해 총수를 필사적으로 응원했고, 파벌은 철의 결속을 자랑했습니다. 『자민당 정치의 변용』의 저자인 나카키타 고지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자민당은 사실상 파벌 연합체였고, 파벌은 당 안의 당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말 자민당의 잇따른 금권정치 스캔들에 따른 정치개혁으로 파벌의 입지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94년 소선거구제 도입으로 한 선거구에 한 명이 입후보하면서 파벌 간 나눠먹기식 공천이 어렵게 됐습니다. 당 총재를 비롯한 집행부가 공천권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정치자금규제법 개정으로 기업과 각 단체의 헌금이 제한됐습니다. 파벌의 존재감은 엷어졌고, 결속력도 떨어졌습니다. 당 집행부에 불만이 있어도 ‘침묵이 금’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입니다.

 

 

조각이나 개각 인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탈파벌을 내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래 내각 인사는 총리의 전권 사항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7일의 개각을 앞두고 “자민당 파벌의 균형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1일 단언했습니다. 당정 관계도 ‘당고정저’에서 ‘정고당저’로 바뀌었습니다. 파벌은 지금 장관 후보가 아닌 중견·소장층의 부(副)장관·정무관 자리 배분 정도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파벌 자체도 정보 공유에 역점을 두는 느슨한 형태의 조직으로 격하돼고 있습니다. 나카키타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소선거구제하에서 파벌이 약해지면서 야당이 제구실을 해야 정치의 다원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