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이야기가 예능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최근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의 이야기 입니다.
축구판 고양원더스라 할 수 있는 '청춘FC'는 축구에 인생을 걸었다 갈 길을 잃어버린 '축구 미생'들이 다시 모여 꿈과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방송 전부터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고양 원더스와 비교됐던 '청춘FC'가 예능프로그램으로 살아남은 비밀은 무엇일까요?
사실 예능인들이 팀을 만들어 스포츠 종목에 도전하는 컨셉트는 이미 MBC '무한도전'이나 KBS '우리동네 예체능' 등을 통해 익숙해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는 이들의 좌충우돌 모습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춘FC'는 유재석이나 강호동과 같은 예능인이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안정환·이을용 감독, 이운재 코치, 김은중 코치 등 국가대표 출신 축구인들이 지도하는 '축구 미생'들은 한때 태극마크를 꿈꾸며 볼을 찼던 선수 출신의 청춘들입니다.
이들에겐 탁월한 예능 감각도 없을뿐더러 웃음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도 없습니다. 무한경쟁 속에 다시 찾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살벌한 열정과 의지가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청춘FC'는 배꼽 잡는 '웃음코드'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간간히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웃음이 있을 뿐입니다. 단순히 '웃음'만을 놓고 따진다면 '청춘FC'는 낙제점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재미'를 따진다면 이만한 예능프로그램도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청춘FC'의 강점은 억지웃음 대신 진심과 공감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식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가를 촉촉이 적시다가도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청춘FC'입니다.
'청춘FC'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안정환의 재발견'입니다.
프로축구 사령탑 자리를 마다하고 '청춘FC'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안정환 감독은 비슷한 상처들을 안고 패배의식에 빠져있던 축구 미생들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지만 인간적인 소통으로 덕장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선수시절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에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선수들과 끊임없이 인간적인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에선 "못 하면 그냥 쳐내면 돼. 여기 오고 싶은 사람 많아" "정신 나간 놈"이라고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면서도 뒤에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우리도 경험한 것"이라며 아픔을 공유하고 보듬습니다.
특히 욕설 섞인 거친 입담에도 공감할 수 있는 건,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진심과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큰 형님 리더십'으로 인해 축구 미생들은 점차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안정환 감독을 비롯한 이운재, 김은중 코치 등 국가대표 출신들의 축구 내공을 지켜보는 것도 이 프로그램이 갖는 재미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축구 미생'들에게 전수해주는 축구 기술과 철학은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겁니다.
'청춘FC'는 모처럼 시청자들에게 진정한 힐링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축구 미생'들의 도전과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그동안 놓고 지냈던 '꿈과 희망'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뜻 깊다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청춘FC'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자극적인 소재나 화려한 쇼, 그리고 스타가 없어도 '참신한 소재'와 '진정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데 있습니다.
시청률은 4% 선으로 폭발적이진 않지만, 시청자들의 결속력은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시청자들은 공식 SNS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 고마운 친구들이 생각났다. 좌절은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축구 미생들의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졌고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많은 교훈을 얻었다. 젊음은 엄청난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됐다”등 다양한 반응들을 쏟아냈습니다. 또한 "맨유, 첼시보다 흥분되는 그 이름 '청춘FC'"라며 매주 방송을 기다리는 설렘을 드러내고 있으며, 벌써부터 '제2의 청춘FC'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은 오로지 축구로만 이야기하는 청춘들의 땀방울로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고 따뜻하고 섬세한 연출로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이야기”, “꿈보다 겁을 먼저 배운 젊음이 서글픈 밤”, “젊음의 매 순간이 기회임을 젊음은 종종 잊는다”와 같은 자막들은 청춘들의 상처를 달랬고 험난한 세상에 발을 디딘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능과 다큐의 만남'이라는 리얼 예능프로그램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청춘FC'가 앞으로 현실 속에서도 의미 있는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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