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기’는 중국에서 2012년 12월 28일부터 2013년 2월 5일까지 방영된 총 80부작의 역사드라마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 ‘초한지’라는 이름으로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는데, 드라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큰 줄거리는 중국 소설 ‘초한지’의 내용인 항우와 유방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신 삼국’으로 유명한 고희희 감독입니다. 이 글에선 일반적 명칭인 ‘초한지’로 드라마 ‘초한전기’를 칭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 국내 방송에서도 ‘초한지’란 이름으로 방송되기도 했구요!
일반적으로 ‘초한지’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고전소설은 ‘초한연의’(楚漢演義)라고도 하는데, 진나라말 전한초, 혼란스럽던 초한쟁패기 중원의 정세를 풀어낸 역사소설입니다. 명나라 때 종산거사(終山居士)가 쓴 ‘’서한연의가 그 원본이라 하나 그 인물 자체도 정체불명이기 때문에 진짜 저자는 알 수 없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한지’는 또한 ‘삼국지’나 ‘수호지’등 여타 중국의 3대 기서와 달리 독립된 작품으로 남아있지 않은게 특징입니다. 시중에 ‘초한지’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은 제목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작가들이 쓴 별개의 작품으로, 사마천의 사기(역사책)를 뼈대로 해서 진말~ 서한초기까지의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제각기 살을 붙인 것입니다.
‘초한지’의 가장 일반화된 줄거리는 진시황의 천하통일 후 억압받던 민중들이 난을 일으키자, 초나라 귀족이던 항량과 조카 항우가 난세를 틈타 대두하고, 한켠에선 시골 정장(동네 파출소장격)출신의 유방이 몸을 일으켜 세를 불려 천하를 놓고 대립하다가 유방의 승리로 끝나는 내용입니다. 일부 번안가들은 창해공의 진시황 암살음모부터 시작하거나 진나라 승상 여불위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마지막 부분도 한신과 관련된 ‘토사구팽’에서 벗어나서 ‘오초칠국의 난’과 한무제의 즉위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드라마 ‘초한지’에는 감독이 같고 제작 프로덕션이 같아서인지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 삼국’에 나왔던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신 삼국’에선 유비를 연기했지만 여기선 진시황을 연기하는 우화위라든지, 여포를 연기했으며 여기서도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는 항우를 연기하는 하윤동, 돼지 백정 장비를 연기했으며 ‘초한지’에서는 개백정 번쾌를 연기하는 강개. ‘신 삼국’에서는 풍채 좋은 원소를 연기하다가 여기서는 수염 없는 환관 고자 조고를 연기하는 허문광, 그리고 ‘신 삼국’에서 조비를 연기하던 우빈이 여기선 진의 2대 황제인 폭군호해를 연기하는 등 보다보면 이런 배우들 찾는 재미도 쏠쏠하게 있습니다.
또한 ‘신 삼국’에 비해 여성배역의 미모가 대폭 향상되었다는 세간의 평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여치역을 맡은 친란도 ‘신 삼국’의 초선보단 낫다는 정도이니... 다만 중요배역중 하나인 우희역을 제의받은 임심여(‘신 삼국’의 손부인역)는 스케쥴 문제로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우희역에는 임심여 대신에 이의효라는 여배우가 출연했는데 이의효는 ‘신 삼국’에선 사마의의 첩 정주역으로 출연했었습니다.
스토리 진행에 있어선 기존 소설 ‘초한지’ 플롯 보단 역사서인 ‘사기’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다고 분석됩니다. 또한 신희공주의 조고 암살모의 같은 오리지널 에피소드도 첨가 했습니다. 그러나 진행 부분에서 무척 느려 총 80화 중 10화에 진시황이 죽고 무려 40화에 와서야 조고가 죽어 진이 멸망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탓인지 진의 장수 장한의 투항보다 황제 호해가 먼저 살해되거나 하는 타임라인의 수정이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망의 ‘거록대전’은 출전, 승리는 있는데 그 과정이 몇 분에 대충 지나가 버리는 축약 또한 있습니다.
다른 특징으로는 여자 캐릭터들의 비중이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신 삼국’ 보다 매우 커졌다는 것입니다. ‘신 삼국’에서는 초반부의 초선, 중반부의 손부인과 주유의 처 소교를 빼면 여자 캐릭터의 등장도 거의 없고 비중도 별로 크지 않은데 반해 이번 작품에서는 초반부터 과부 조씨를 비롯하여 유방의 정실부인인 여치, 유방이 총애하던 척부인, 멍청한 위왕 위표를 뒤에서 잡고 흔드는 박희(유방의 여자들 중 최후의 승자) 등 이들의 비중 또한 제법 크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항우와 사랑에 빠지는 우미인(우희)도 당연히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며 우희와 항우의 러브 스토리는 나름 초반부에서 크게 다뤄집니다.
한편 79화에서 항우가 죽고, 마지막 80화에서는 전반부에서 고향에 돌아온 한신이 과거의 보답을 하는 것과 노관, 한신, 경포가 제거당하거나 유방을 배신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토사구팽’ 과정이 좀 심하게 압축된 감이 있습니다. 한신과 종리말의 관계나 장량의 처신까지 생략하고 넘어갔을 정도이니. 대신 후반부에 유방이 중양리를 찾아 감회에 젖고 조씨와 재회하는 장면, 그리고 아들 유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더 공을 들여 시리즈를 마무리하는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초한지’에 대한 저 개인의 주관적 감상평을 하자면 우선 전작인 ‘신 삼국’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면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드라마 작품성을 평하며 굳이 ‘신 삼국’과 비교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신 삼국’과 ‘초한지’가 같은 방송사에서 같은 제작스탭(감독 포함)들이 다수의 중복 출연 배우들과 함께 연이어 제작·방송했기 때문입니다.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드라마 스토리 또한 중국 3대 기서 중에서 쌍벽을 이루는 ‘삼국지’와 ‘초한지’이니 말입니다(물론 ‘삼국지’가 ‘초한지’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는 훨씬 높긴 하지만...).
또 하나 개인적으로 간과 할 수 없는 점은 제가 ‘초한지’를 자막본이 아닌 더빙본으로만 감상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중국어(북경어)를 전혀 하지 못하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온전히 판단하기엔 아무래도 더빙본보단 자막본으로 감상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사실 치명적 단점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초한지’의 두 주인공중 한사람인 유방역의 배우가 중화권 최고의 연기파 배우라 평가 되는 진도명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더더욱 뼈아픈 점입니다. 유방역의 성우가 수준급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해도 역시 연기는 배우 자신의 목소리로 감상해야지요!
이렇듯 전작격인 ‘신 삼국’을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들이라면 이후 ‘초한지’를 대하며 상당부분 당황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그만큼 두 작품의 전제적 완성도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신 삼국’은 첫 번째 방송 후 지속적으로 케이블 채널 등에서 재방송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초한지’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차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물론 원작들인 ‘삼국지(연의)’와 ‘초한지’의 명성과 인지도 그리고 드라마 시청자들의 두 원작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 역시 차이가 분명히 있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록 ‘초한지’는 기대에 못 미치는 드라마였지만 최근 중국 방송계의 전반적인 드라마 제작능력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신 삼국’도 지나친 축약과 일부 스토리의 왜곡 등이 있으나 드라마적 완성도는 수준이었는데, 올해 중국에서 제작·방송된 ‘대군사사마의지군사연맹’이라는 드라마에 이르면 그 완성도가 감탄사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국내 케이블 채널에서 ‘사마의 : 미완의 책사’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고 있기도 한 이 드라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국지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위나라의 책사 사마의가 주인공입니다. 일부 스토리의 창작 및 왜곡이 다소 과한 점은 있으나 수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력과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이 작품에 대한 감상글도 한 번 포스팅해 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국내 방송사들의 대하사극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로 끝맺음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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