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NHK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와 KBS 대하드라마 ‘다산 정약용’

Chris7 2016. 10. 13. 12:00

개인적으로 전 사극 매니아라 할 정도로 드라마 장르 중 유독 시대물(사극)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예능 등 꽤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간 날 때마다 즐기곤 있지만 예전 TV 시청을 거의 하지 않았던 때에도 공중파 방송사를 위주로 사극만은 챙겨보곤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진 말입니다. 즉 최근엔 국내 사극을 딱히 시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토리상 시대배경만 과거일 뿐인 판타지성 사극에 대한 거부감에다 사극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KBS 대하드라마에 또한 크게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국내 사극에 대한 흥미가 결정적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한건 아마도 2010년 무렵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더 정확히는 2008년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 이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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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영방송사인 KBS는 지난 1981년 ‘대명’을 시작으로 대하드라미라는 이름으로 시대물, 즉 사극을 제작·방송해 왔습니다. 1963년부터 주로 역사상의 인물이나 사건 등을 주제로,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49화에서 50화가 방송되고 있는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를 벤치 마케팅 한 것입니다. 중간에 1994년과 2009년 두 차례 재정난으로 시리즈 방송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KBS 대하드라마는 올해 초 방송된 ‘장영실’까지 거의 해마다 한편씩 꾸준히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년 제작·방송이 기획되었던 ‘다산 정약용’이 편성 취소되며 저를 비롯한 많은 사극 팬들을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전 KBS 대하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수 년 전 이미 버렸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2008년의 ‘대왕 세종’부터입니다. 당시 '대왕 세종'은 오래전 대하드라마 시리즈 시작부터 방송되었던 기존의 KBS 1TV에서 돌연 2TV로 채널을 변경하고 말았습니다. 상업광고가 붙는 2TV로 드라마를 옮겨 돈을 벌겠는 계산에서였습니다. 방송사내 재정적 압박을 일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같은 공영방송사인 NHK의 뚝심 있는 대하드라마 편성과는 확연히 차이가 보이며 큰 실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일본의 대하드라마 시리즈 역시 사회 내 전반적인 TV 시청률 감소 등으로 현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방송된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흥행 참패 후 큰 폭의 시청률 하락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국내에서도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인지도가 있는 이노우에 마오 주연의 ‘꽃 타오르다’가 평균 시청률 12%로 ‘타이라노 키요모리’에 버금(?)가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자 대하드라마가 한계점에 도달한게 아니냐는 말들이 일본방송가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누구하나 대하드라마 폐지를 언급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일본통은 아니나 최소한 대하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위기에 빠진 NHK 대하드라마 제작팀은 이에 대한 타계 책으로 2013년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로 일본사회에 신드롬적 선풍을 일으킨 배우 사카이 마사토를 주인공으로 2017년 올해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전국시대의 무장 사나다 유키무라를 내세운 ‘사나다마루’를 기획·편성했고 과거의 화려했던 시청률엔 비할 바 아니지만 비교적 괜찮은 시청률을 현재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방송중인 대하드라마‘(대왕 세종’)의 채널을 바꿔버리거나 기획과 주연 배우 캐스팅까지 마친 드라마(‘다산 정약용’)를 돌연 편성취소 시켜버린 한국의 KBS와는 대조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드라마 시리즈가 위기에 빠졌다면 일본의 NHK처럼 탑클래스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 하고 주연배우와 케미가 좋은 주·조연급 배우들을 집중 출연시키는 등의 타계 책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편성 취소라는 무책임한 결정을 해버린 KBS는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쌓여왔던 대하드라마 시리즈에 대해 가졌던 불신감을 결국 폭발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방송계는 여러모로 다름을 인정합니다. 일본의 경우 과거엔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에 캐스팅 되는걸 배우 일생의 목표로 삼는 분위기까지 있었습니다. 예전과는 상당부분 변하긴 했으나 현재에도 배우로서의 큰 명예임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NHK 대하드라마 출연은 상당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특히 주연급배우의 경우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작품에만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고 출연 개런티 역시 민영방송사의 일반 드라마에 비해 약 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합니다. 그럼에도 일본 배우들이 대하드라마 주연(출연)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이유는 1억3천만 일본인 전체를 아우르는 드라마 시리즈 자체의 브랜드 가치에다 주연급 출연 이후 부가적으로 따르는 배우로서의 가치 상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KBS와 NHK의 대하드라마를 단순 비교 할 순 없습니다. 방송사는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이 가진 시리즈에 대한 시선이 크게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KBS의 대하드라마에서도 방송출연을 계기로 배우로서 큰 도약을 한 이들이 더러 있긴 합니다. 2000년에서 2002년까지 장기간 방송되었던 ‘태조 왕건’의 최수종과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만 1년간 방송되었던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이 바로 그들입니다. 배우 최수종은 대하드라마 출연이전까진 트랜디물 중심의 현대극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초 ‘태조 왕건’의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 속 최수종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리며 호연을 펼쳤고 이 후 2006년의 ‘대조영’과 2012년의 ‘대왕의 꿈’까지 대하드라마에서만 3번의 주연을 맡기에 이릅니다.





배우 김명민 역시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이순신 장군역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받으며 드라마 한 편으로 단박에 명품배우 반열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순신장군이 연기될 때면 반드시 ‘불멸의 이순신’속 김명민의 연기와 비교되곤 할 정도로 드라마 속 그의 연기는 일품이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 출연 전까지 배우로서 입지가 불안했던 김명민은 외국 이민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 이후 그는 연기력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대하드라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또 한사람 있습니다. 바로 ‘용의 눈물’의 배우 유동근입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만 1년 반에 걸쳐 방송되었던 ‘용의 눈물’은 가히 KBS 대하드라마의 정수라 할 만큼 드라마의 완성도와 출연배우들의 연기면에서 최고였던 드라마였습니다. 특히나 태종 이방원역의 유동근은 흡사 실제 역사 속 이방원의 모습이 실제 그랬을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명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KBS 대하드라마는 최초 방송 시작 후 긴 시간동안 대하드라마라는 이름에 걸 맞는 명작들을 수차례 배출하며 타 방송사들의 시대물(사극)과는 격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과 2007년 방송된 최수종 주연의 ‘대조영’을 마지막으로 조금씩 힘이 바진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대왕 세종’에 이르러 채널 변경이라는 악수 까지 두고 말았습니다.


이 후 대하드라마는 2014년 조재현 유동근 주연의 ‘정도전’으로 반짝 부활 하는 듯 했으나 그때부터 기존의 1년, 약100부라는 기본 편성에서 6개월, 50부로 축소 기획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담이 된 KBS는 올 초 방송된 ‘장영실’은 24부작으로 축소하더니 결국 내년 방송이 기획되었던 ‘다산 정약용’은 아예 편성 취소시키기에 이르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주연 정약용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연정훈에게 제작진이 달랑 문자 한 통으로 편성 취소를 통보해 또 한 번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시청자들의 수신료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영방송사인 KBS와 NHK는 그 기본 토대가 같다하겠습니다. 하지만 방송사의 간판 드라마격인 대하드라마를 대하는 양측의 시선엔 큰 온도차가 있음을 느낍니다. 최근 수년간 케이블 채널은 물론이고 공중파 방송사들에까지 밑도 끝도 없는 정체불명의 얼치기(?) 사극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KBS 대하드라마는 오랜 동안 시대극(사극)으로서 격이 다른 품격과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개중엔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 작들도 더러 있었습니다만...


최근 KBS는 지난 추석연휴 기간 전후에 방송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임진왜란 1592’와 같은 팩츄얼 드라마를 또다시 기획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부에서 ‘국뽕’ 드라마라 혹평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제대로만 만들면 시청자들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임진왜란 1592’는 여실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KBS는 단발성 기획이 성공하니 얼씨구나 싶어 재탕 삼탕을 할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란’ 말처럼 오랜 시간 공영방송사로서의 책무와도 같았던 대하드라마에 충실해 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대하드라마가 ‘태양의 후예’같은 드라마처럼 돈벌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처럼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문자 그대로 ‘큰 강처럼 유유히 흘러’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언젠가 시청자들이 그 노력에 보답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