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친박근혜)이 당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까지 거의 독식하면서 강경 친박과 온건 친박, 비박(비박근혜)의 구별이 뚜렷해졌습니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는 진박(진짜 친박)까지 다시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지도부가 친문(친문재인)일색으로 구성되면서 새누리나 더민주 모두 주류 쏠림이 강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선 소외된 여야 각 당의 비주류와 국민의당을 아우르는 ‘제3지대론’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더민주의 전당대회결과 대표직과 최고위원직들의 절대다수를 ‘친문세력’이 장악하자 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친문계의 당 장악은 내부결집으로 이어져 안정적으로 당이 운영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와 세월호 문제 등 정국 현안과 관련해 ‘좌클릭 강경 기조’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과의 충돌이 불가피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협치는 커녕 19대 국회에서 연출됐던 여당의 일방통행과 야당의 발목잡기가 20대 국회에서도 다시 재현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아울러 내년 대선과 관련해서는 ‘그들만의 리그’로 친문의 대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가 안정적으로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이나, 결국 외연 확장 실패로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이란 극단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벌써부터 새누리의 친박과 더민주의 친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세력들이 ‘제3지대’에서 연합한다는 ‘정계개편론’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이 중심에 이번 더민주 전대로 물러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있습니다. 여기에 국민의당의 박지원 비대위원장까지 가세했습니다. 더불어 새누리의 오세훈 전 시장과 유승민 의원의 행보도 향후 주목받을 것입니다.
현재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새누리당 비박계와 더민주 내 비주류, 국민의당이 힘을 합치는 '거시 제3지대론'과 더민주 비주류와 국민의당이 헤쳐모이는 '미시 제3지대론'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국민의당을 축으로 여야 모든 비주류가 새로운 정당을 꾸리는 '중도 통합론'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변수는 향후 제3지대에 머물 것으로 보이는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의 행보입니다. 이미 정치권에서 인심을 잃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추동력은 약하지만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의 '늘푸른한국당',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새 한국의 비전' 등도 미묘한 변수로 꼽힙니다.
이 같은 비주류들의 활로 찾기는 서서히 군불을 때다가 내년 중순 이후 점차 본격화할 것이란 설명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즈음부터 각 당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룰'을 정하고,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도 불거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극단에 속하지 못한 소외된 중도성향 세력들이 제3지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에 가속을 붙일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에선 일찌감치 비박인 김무성 전 대표가 대권 행보를 선언하며 마이웨이를 걷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친박세력과 결을 달리하며 원외에서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 온건파인 유승민 의원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권을 내놓은 김종인 더민주 전 비대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친문 진영을 비판해온 그는 역시 친문과 거리를 둔 손 전 고문과 최근 접촉했습니다. 친문과 갈등하며 떨어져 나온 국민의당의 박지원 비대위원장, 안철수 전 상임대표도 손 전 고문에게 손을 내밀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형국이 됐습니다.
그러나 ‘제3지대론’ 등의 정계개편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입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비박계와 더민주 비주류가 탈당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시나리오입니다. 제3세력 구심점으로 나설 강력한 대권주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계개편의 전제는 양당 비주류의 세 결집을 위한 구심점 마련입니다. 강력한 대권주자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집권 가능성이 엿보이는 유력 주자가 나서야 새누리당과 더민주 현역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을 감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닌 주자들은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승민 의원, 야권에선 안철수 전 대표, 손학규 전 고문,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정치색깔도 중도 성향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해관계나 미묘한 성향의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정치사에서 진보정당과 달리 보수정당은 분당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분당과 합당을 거듭하며 세력을 키워온 진보정당과는 생리 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치이념이 아닌 이해관계나 이익에 방점을 찍은 만큼 새누리당의 비박이 탈당을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게 현실입니다.
기본적으로 국회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현실적 목표는 자신들의 자리유지, 즉 총선에서의 당선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선에서 자당 후보의 승리보다도 우선시 되는 것이 자신들의 총선승리인 것입니다. 슬픈 현실이긴 합니다만 현역 의원들이 움직이기 위해선 ‘제3지대론’같은 정계개편론이 가진 명분과 당위성 보단 차기 총선에서의 유·불리가 우선시 됩니다. 강한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누군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대권주자가 깃발을 들고 앞서지 않는 한 ‘제3지대론’ 같은 정계개편은 쉽사리 현실화 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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