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에이리언’ 시리즈와 ‘글래디에이터’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을 겸해 메가폰을 잡고 올랜도 블룸(발리안), 에바 그린(시빌라 공주), 리암 니슨(고프리)등을 주연으로 2005년 제작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건국된 예루살렘 왕국이 당시 이슬람권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딘에 의해 무너진 12세기 말이 시대적 배경이 됩니다. 특히 ‘킹덤 오브 헤븐’은 극장판 상영본과는 별개로 약 50여분의 편집분이 추가되어 따로 출시된 감독판이 유명한데요...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으로 인해 한동안 감독판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최근 10여년, 아니 20여 년간 감상한 영화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진지하게 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선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주인공 ‘이벨린의 발리안’이 가히 기사도의 정수라고 할만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맹활약을 펼치고 종국에는 살라딘의 막강한 군대에 대항해 소수의 수비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수성전을 지휘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 보두앵4세의 누나이자 보두앵5세의 어머니이며 아들의 사후 남편 ‘뤼지냥의 기’와 함께 공동 국왕이 된 ‘시빌라 공주’와의 러브스토리도 양념으로 추가되는데요...
수년전 처음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영화 속 발리안이 너무 완벽한 영웅으로 그려져 가공의 인물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여기저기 기록들을 뒤져보았는데, 알고 보니 실존인물이더군요! 근데 문제는 영화 속 인물들과 주요 스토리가 상당히 왜곡되거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각색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영화의 메인 스토리중 하나인 발리안과 ‘시빌라 공주’와의 러브라인부터가 허구였습니다. 물론 당시 왕국의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던 중 시빌라와 발리안의 결혼 문제가 한때 거론되었던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간의 실제 나이차가 20세 이상이었고 영화와는 다르게 시빌라 공주는 ‘뤼지냥의 기’라는 인물에 푹 빠져 있었기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정치적 역학관계도 있습니다만...). 즉 영화 속 이야기와는 다르게 당시 절세미남으로 유명했던 기와 시빌라가 서로 열렬히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정치 지형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이 당시 국왕이었던 보두앵4세는 나병(한센병)으로 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실제 나병의 발병시기가 역사 매니아들 사이에서 논란에 휩싸여 있기도 한데, 암튼 몸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다 보니 자연스레 후계자 문제가 왕국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 와중에 왕국은 보두앵4세를 가운데 두고 왕의 친모인 아그네스와 누나 시빌라 그리고 ‘샤티용의 르노’등이 주축이 된 ‘궁정파’와 영화에선 사법관 ‘티베리아스(영지이름)’로 묘사된 트리폴리 백작 레몽3세와 발리안 그리고 보두앵4세와 시빌라 남매의 배다른 여동생인 이사벨라 공주 등의 ‘귀족파’로 분열되어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왕의 5촌 당숙이자 즉위초기 섭정이기도 했던 레몽3세가 자신의 지지자인 발리안을 시빌라의 남편으로 밀기도 했던 것입니다(이 부분은 기록에 따라 발리안 자신이 아니라 그의 형제인 보두앵이라고도 해서 확실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왕의 어머니인 아그네스가 적극 지지하고 시빌라가 목을 맬 정도로 빠져있던 ‘뤼지냥의 기’가 시빌라의 두 번째 남편으로 결정되고 마는데, 여기서 미묘한 권력층의 알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정확한 기록이 전해져 오지 않는 까닭에 확실한 정황은 알 수 없으나 처음 기와 시빌라의 결혼이 결정될 때만 해도 국왕 보두앵4세도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1180년경). 이는 당시 세력이 강했던 당숙 레몽3세와 발리안이 속한 이벨린가의 위세를 어느 정도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는 대목입니다. 물론 레몽3세가 보두앵4세 자신이 누구보다 믿고 의지할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시빌라가 발리안이나 혹은 레몽3세 측에서 미는 인물과 결혼했을 시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사후 발생할 왕권 약화를 우려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당시에도 왕권이 강했다고 할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시빌라와 기의 결혼으로 ‘궁정파’에게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 보두앵3세는 대신 레몽3세의 ‘귀족파’에도 이미 당근을 미리 주었으니 바로 자신의 계모인 마리아 콤네나(비잔틴 황제의 조카)와 발리안과의 재혼을 허가했던 것입니다(1178년경으로 추측됨). 그리고 마리아 콤네나의 딸이자 시빌라의 잠재적 경쟁자인 이사벨라 공주는 왕국의 오랜 충신이었던 험프리2세의 손자인 험프리4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로서 발리안과 그의 이블린 가문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들 결과로 알 수 있는 점은 당시 왕국의 최대 정치적 이슈였던 시빌라의 결혼이 단시일에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정치집단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켰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위에 언급된 ‘험프리2세’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발리안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고프리(리암 니슨 분)라는 인물이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험프리2세를 모티브로 각색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 속 발리안의 아버지는 ‘바리장’이란 인물로 보두앵4세의 할아버지인 풀크1세에 대항해 야파백작이 발란을 일으켰을 때 자신의 주군인 야파백작이 아닌 국왕 풀크1세편에 가담했고 반란진압 후 그 공으로 이벨린 영지를 하사받게 됩니다. 영화 속에선 고프리가 국왕 보두앵4세와 함께 여러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운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발리안의 아버지 바리장은 왕의 할아버지인 풀크1세와 큰아버지 보두앵3세 그리고 아버지 아말릭1세 시절의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고프리의 활약은 사실 험프리2세와 모습과 거의 일치합니다. 토론의 영주 '험프리2세'야 말로 보두앵3세와 아말릭1세 그리고 ‘나병왕’ 보두앵4세에 이르는 3대에 걸친 충신으로 1179년 살라딘의 무슬림군과 벌어진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국왕 보두앵4세를 구하고 대신 전사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62세였다고 합니다. 선대왕들 때부터 수차례 이집트 원정 등에 종사하며 살라딘과도 친분을 나누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그의 사후 이슬람권에서도 그의 기사도 정신을 추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정도였다 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과 스토리가 많은 부분 각색되다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설명할 부분이 많아 이야기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요... 일단 보두앵4세의 누나 시빌라 공주와 ‘뤼지냥의 기’의 결혼 후 왕국의 주도권은 앞서 설명한 ‘궁정파’가 쥐게 됩니다. 국왕도 매형인 기에게 섭정을 맡기며 힘을 실어줬으나 잘생긴 외모 외에는 딱히 재능이 없었던 기는 거듭해서 실정을 하게 되고 결국 이에 실망한 국왕은 기를 섭정자리에서 축출한 뒤 자신의 조카, 즉 시빌라와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몽페랏의 기욤 사이의 아들(보두앵5세)을 후계자로 공식화하며 기와 시빌라의 결혼까지 무효화하려고 시도 합니다. 이때 레몽3세와 발리안 등의 ‘귀족파’들은 국왕의 배다른 여동생인 이사벨라공주(발리안의 의붓딸)와 그녀의 남편이자 충신 험프리2세의 손자인 험프리4세를 후계자로 밀려고 하나 국왕이 주저한데다 험프리4세 본인도 반대를 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역사 기록상 사실 여부를 확신 할 순 없으나 아마도 이 부분이 영화 속에서 각색되어 발리안이 국왕의 후계자 제의를 거부하는 걸로 묘사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킹덤 오브 헤븐’ 극장판에선 시빌라의 아들 보두앵5세 출연부분이 완전히 삭제되어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감독판에선 시빌라가 왕을 대신해 섭정의 역할을 하다 나병이 걸린 어린 아들이 불쌍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는 보두앵4세의 사후 왕위에 오른 보두앵5세의 섭정은 레몽3세 입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왕의 모후 시빌라는 기의 영지로 추방(?) 혹은 피신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로서 ‘귀족파’들이 다시 한 번 실권을 쥐는 것처럼 보였으나 보두앵5세가 1년 만에 사망함으로써 기의 영지로 추방되어있던 문제의 시빌라가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맙니다. 처음 그녀는 레몽3세와 발리안 등의 '귀족파'들에게 남편을 새로 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왕이 되자마자 오매불망 사랑하는 기를 냉큼 불러와 공동 국왕의 자리에 올려버립니다. 이로서 예루살렘 왕국은 무능한 기와 철딱서니 없는 시빌라의 손에 그 운명이 놓여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샤티용의 르노’와 기사도와는 거리가 먼 ‘성전기사단’ 등의 강경파까지 득세하게 되었으니...
여기서 또 잠시 르노란 사고뭉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르노는 이름 없던 프랑스 출신의 기사에서 두 번의 결혼으로 입신양명한 인물인데요... 첫 번째 결혼은 1153년 안티오크 공작의 미망인인 콘스탄스와 하게 됩니다. 안티오크 공국이 예루살렘 왕국의 북쪽 요충지인 관계로 젋은 미망인이었던 콘스탄스의 재혼은 당시 국왕이었던 보두앵3세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귀족들을 포함해 여러 명의 신랑감 후보가 그녀에게 소개되었으나 콘스탄스는 계속해서 퇴자를 놓다 이윽고 선택한 인물이 바로 르노였던 것입니다. 과연 르노에게 어떤 매력이 있어서 공작부인의 간택(?)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이지만 어찌되었든 르노는 정식은 아니지만 안티오크 공작행세를 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당시 비잔틴 제국의 영향력아래에 있던 키프로스를 약탈하다 비잔틴 황제에게 혼꾸녕이 난 뒤 1년 후 무슬림군에게 포로로 잡혀 무려 16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의 극단적인 반무슬림 성향이 더욱더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가 포로로 있던 기간 중 르노를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있게 되는데, 바로 아내 콘스탄스의 딸이자 르노에겐 의붓딸이 되는 마리아가 당시 비잔틴 황제 마뉴엘1세의 새 황후가 되며 르노는 졸지에 비잔틴 황제의 장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비잔틴 황제 마뉴엘1세는 장인을 위해 0.5톤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금을 무슬림군에 지불하였고, 그덕에 자유의 몸이 된 르노는 이번엔 캐락성의 미망인인 스테파니와 또 다시 결혼하게 됩니다(르노의 부인 콘스탄스는 남편이 풀려나기전 사망함). 영화에서 보두앵4세의 기독교군과 살라딘의 무슬림군이 만나는 곳의 바로 그 성입니다. 캐락성의 영주가 된 르노는 그 유명한 ‘몽지사르 전투 (1177년)’에서 보두앵4세를 도와 살라딘의 대군을 격파하는 무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런걸 보면 그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산적 두목 같은 외모에 천방지축이었던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왕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1187년의 ‘하틴 전투’가 발발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이 문제아 ‘샤티용의 르노’가 자신의 영지인 캐락성 앞을 지나는 부유한 무슬림 캐러번 행렬들을 지속적으로 약탈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중 한 행렬에 살라딘의 누이가 있었습니다. 일부기록에선 르노가 살라딘의 누이를 강간한 뒤 살해했다고도 하는데, 그것보단 그냥 희롱정도를 했고 이에 수치심을 느낀 그녀가 자살했거나 포로가 된 자신이 살라딘에게 부담이 될가 염려한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게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암튼 이에 분노한 살라딘이 역대 최대 규모의 군대를 모아 지하드(성전)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실제 전투에 참가한 무슬림 군대의 규모는 대략 3만 정도였으며 이에 대항하는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는 약 1만5천 정도였다고 합니다(얼핏 군사수가 너무 적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당시 서방의 군사수는 중국 등과는 달리 순수 전투인원만 집계하는 것이 관례였던지라 병참부대나 후방 지원부대원들은 뺀 수치입니다. 때문에 중국식으로 계산하면 군사수가 2-3배이상 늘어나게 됩니다).
영화에선 티베리아스(레몽3세)와 발리안이 전투의 무모함을 주장하며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론 처음부터 끝까지 전투에 참여합니다. 물론 레몽3세와 발리안은 영화에서처럼 기독교군에게 유리한 지구전을 주장했고 특히 레몽3세는 당시 자신의 아내가 방어하고 있던 영지(티베리아스)까지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설파합니다. 이에 국왕인 기도 처음엔 지구전에 찬성하나 성전기사 단장인 제라르와 르노의 꾐에 빠져 결국 군대를 무리하게 이동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결과는 영화에서처럼 참패로 끝나고 1만5천의 군사 중 3천여 명을 제외하곤 괴멸되기에 이릅니다.
이때 레몽3세와 발리안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전투에서 빠져 나오지만 레몽3세는 얼마못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티레로 피신했던 발리안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던 아내와 아이들을 성 밖으로 데려나오기 위해 살라딘에게 통행증을 부탁했고 살라딘은 예루살렘 공성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전제로 통행증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루살렘성에 발리안이 들어가자 성안의 기독교인들은 그에게 사령관자리를 안기며 매달렸고 발리안은 할 수 없이 전후사정을 살라딘에게 설명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이 전투에 참여할 수밖에 없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관대한 살라딘은 이번에도 이해한다는 뜻을 발리안에게 보내오게 되고 결국 수일간에 걸친 예루살렘 공방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공방전이 절정에 이를 즈음 발리안은 살라딘에게 협상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평화적 항복을 받아주지 않으면 예루살렘을 잿더미로 만들고 모두 함께 죽을 것이라 살라딘을 압박했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묘사됩니다. 결국 평화적 항복을 받아들인 살라딘은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기독교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조약을 발리안과 맺게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돈을 받고 포로를 불어준다는 살라딘의 조건이 비인도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으나 그런 일은 당시엔 통상적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당시 예루살렘성은 살라딘군대가 거의 접수 일보직전이었으며 성안의 기독교인들을 모두 포로로 삼고 성안의 금은보화는 모두 자신의 군사들에게 포상으로 나눠줄 수 있었기에 성안의 돈으로 성안사람들의 몸값을 지불한다는건 무슬림들 입장에선 엄밀히 말해 손해 보는 장사인 것입니다. 암튼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총주교가 거액의 돈을 착복했다거나 살라딘의 동생이 자신 몫의 포로 1천여 명을 그냥 풀어주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성안의 기사 부인들이 울며불며 읍소를 하자 관대한 살라딘은 그녀들의 남편, 즉 기사들을 풀어주기에 이릅니다. 다시 칼을 들고 자신에게 대항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한편 살라딘에게 포로로 잡혔던 기는 1188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그의 철딱서니 없는 아내 시빌라와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그들 사이의 딸들을 데리고 트리폴리 백국과 안티오크 공국을 제외하곤 당시 왕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항구도시 티레로 향했지만 티레의 영주 콘라드는 그들의 입성을 거부했습니다. 그 후 몇 달간 기와 시빌라는 티레성 밖에서 패잔병들을 모았고 3차 십자군 원정대의 선발부대가 도착하자 그들과 함께 무슬림 수중에 떨어진 요충지 아크레를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시빌라와 두 딸들은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그만 죽게 됩니다. 아마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들 중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이가 바로 시빌라 공주(여왕)가 아닐까 하는데요... 남편하나 잘못 맞나, 아니 잘못 선택해 왕국을 패망의 길로 이끌더니 결국은 병으로 객사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렇게 왕위의 정통성을 가진 아내 시빌라가 죽게 되자 기는 사실상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왕위계승권은 시빌라의 이복동생인 이사벨라 공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기는 자신의 왕권을 계속해서 주장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았겠죠!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이사벨라의 어머니 마리아와 의붓아버지인 발리안은 그녀를 남편 험프리4세와 이혼시키고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해 티레를 방어중이던 콘라드와 결혼시켜 버립니다. 사실 이 콘라드란 인물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도 인척간이던 이탈리아 몽페랏 후작 기욤5세의 둘째 아들로 시빌라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바로 그 기욤(일명 긴칼 기욤)의 동생이 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점은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발리안이 영화 속의 완벽한 기사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권력욕이 강하고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보여준 지휘력과 과단성있는 모습은 훌륭하지만 전반적인 역사 속 그의 모습은 꽤나 세속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콘라드와 관련해서도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그의 아버지, 즉 과거 시빌라의 시아버지이기도 했던 몽펠랏 후작 기욤5세는 당시 살라딘의 포로가 되어있었는데 아마도 ‘하틴 전투’에 참가했다 무슬림군에 사로잡혔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암튼 콘라드가 티레성에서 무슬림군에 대항해 강력히 저항하자 살라딘은 기욤5세를 인질로 콘라드에게 항복을 종용하지만 콘라드는 ‘내 아버지는 살만큼 사셨으니 지금 죽어도 딱히 여한은 없으실 것이다’며 계속해서 대항을 합니다. 살라딘이 관대하단걸 간파하고 여유를 부린건지 아니면 콘라드 자신이 냉혹한 것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확실히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살라딘은 기욤5세를 나중에 풀어줍니다. 그 뒤 콘라드는 ‘3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한 프랑스왕 필립2세의 협력까지 얻으며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지만 즉위직전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아사신(어세신)파에 의해 암살되기에 이릅니다.
한편 시빌라의 죽음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는 자신의 옛 주군인 잉글랜드왕 리처드1세(일명 라이언하트)에게 다시금 충성맹세를 하게 되고 그 뒤 우여곡절 끝에 키프로스의 영주가 됩니다. 가만히 보면 기라는 인물이 운 하나는 참으로 타고나지 않았나 싶은데요... 별다른 능력도 없으면서 예루살렘 왕국의 공동 국왕 자리에 오르더니 그의 존재 이유였던 아내 시빌라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후에도 다시금 기사회생해 번듯한 영주자리에 다시금 오르니 말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는데요... 바로 기와 발리안의 이벨린 가문과의 관계입니다. 왕국이 무너지기 전까지 사로 첨예하게 대결하던 기와 발리안 이었지만 훗날엔 서로 깊은 혼인관계를 맺게 되니까요! 즉 키프로스의 영주가 된 기에겐 후사가 없었기에 그의 형 아모리가 영주 자리를 잇게 되고 후에 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리안의 직계는 아니나 그의 형제들의 후손들인 이벨린가는 후에 역시 키프로스로 건너가 유력 귀족가문이 되어 기의 형인 아모리의 후손들과 여러 차례 국혼을 하게 되니까요! 하긴 이 두가문은 처음부터 혼인으로 관계를 시작하긴 했습니다. 기의 형 아모리가 발리안의 형인 보두앵의 사위였으니까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 프랑스로 돌아간 발리안과 시빌라가 ‘3차 십자군 원정’에 나서는 영국의 국왕 리처드1세(일명 라이언하트)와 잠시 만난 후 어디론가(아마도 예루살렘방면)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물론 허구입니다. 하지만 실제 발리안은 예루살렘 함락 후에도 현지에 도착한 리처드1세와 살라딘간의 중재 등을 담당하며 계속해서 활약하게 됩니다. 이 리처드1세와 살라딘간의 피 튀기는 ‘3차 십자군 전쟁’도 참 흥미 진지한(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을 이렇게 표기 하는게 옳지는 않지만) 부분이지만 영화와는 무관한 부분이라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영국의 리처드1세와 예루살렘의 보두앵4세는 서로 5촌 조카와 당숙사이가 됩니다. 즉 보두앵4세의 조부인 풀크왕이 리처드1세에겐 증조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할머니(리처드1세에겐 증조할머니)는 다릅니다. 풀크왕이 예루살렘으로 오기전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 조프루아(일명 플랜태저넷)이며 조프루아의 아들이 잉글랜드 국왕 헨리2세(리처드1세의 아버지)입니다.
두서없이 글을 이어 오다보니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중간 중간 빠진 부분도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기록들을 찾아보니 서로 상충되는 부분 역시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더러는 제자신의 주관적 해석도 첨가되었는데요...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은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당시의 기록들이 앞서 언급되었던 ‘귀족파’에 속하는 인물들에 의해 서술된 것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보두앵4세의 가정교사이자 티레의 대주교였던 기욤이 서술한 ‘바다 너머에서 행해진 일의 역사’입니다. 그러다보니 반대세력이었던 ‘궁정파’에 속한 ‘뤼지냥의 기’나 ‘샤티용의 르노’와 같은 인물들은 실제 이상으로 비하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만 합니다. 물론 백번 유의를 하더라도 그들의 행적에 가히 칭찬할만한 부분은 없지만(르노의 '몽지사르 전투' 참가만 제외하고)...
비록 아쉽게도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진 못했으나 사극 매니아인 저로선 개인적으론 손에 꼽을 명작으로 기억될 ‘킹덤 오브 헤븐’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기분이 울적할 때면 한번 씩 돌려보곤 하는데요... 실제 역사 속 사실과는 달리 많은 부분이 각색되어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고 당시의 상황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예루살렘 왕국이다 보니 주요 배역과 상황이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펼쳐진 점은 있으나 살라딘 등 이슬람권 인물들도 상당부분 객관적으로 묘사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정도 재미와 감동을 줄 영화가 또 언제쯤 나오게 될런지... 영화의 엔딩 크레딧 서두에도 그런 설명이 나오지만 종교가 다르단 이유로 서로 죽고 죽이던 당시의 상황(물론 '십자군 전쟁'엔 종교 외에도 여러가지 복합적 원인이 있습니다만...)이 천년이 지난 작금에도 여전히 국제분쟁의 주요 요인 중 하나임을 보며 착잡함을 금할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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