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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공화당 주류, 최악 트럼프 대신 차악 크루즈 지지

Chris7 2016. 3. 26. 16:28

2016년 미 대선 레이스에서 이례적으로 ‘아웃 사이더’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 당 정체성과 지지기반마저 흔들릴 정도로 트럼프 돌풍이 거센 형편입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미국 공화당이 최악의 카드가 될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현재 당내 경선 2위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을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공화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 22일 크루즈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크루즈 지지에 나섰습니다. 부시와 롬니 모두 애초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을 지지했습니다. 부시는 루비오 상원의원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비오가 중도 사퇴하면서 이들에게 선택지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크루즈 지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입니다.


부시의 선택은 공화당이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경선 1,2위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와 크루즈는 공화당 지도부가 가장 원치 않았던 후보들입니다. 공화당은 최악의 후보인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악인 크루즈를 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3일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1964년 배리 골드워터 이후 가장 극단적인 후보가 될 것이라며 트럼프보다 더 극단적인 면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혹(트럼프) 떼려다 다른 혹(크루즈) 붙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루즈는 금 본위제 복귀, 연방준비제도(Fedㆍ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성 박탈, 국세청 폐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트럼프보다 더 보수적인 공약이라고 FT는 설명했습니다.


또 크루즈는 쿠바 출신의 아버지에 정작 본인이 캐나다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에 배타적입니다. 그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장벽을 설치하고 약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크루즈의 아버지는 1957년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2005년까지 미국 시민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한때 쿠바 출신 아버지를 두고 캐나다에서 태어난 크루즈가 미국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있는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미국 법원은 크루즈의 어머니가 미국 시민권자였고 1970년 크루즈가 태어날 당시 미국과 캐나다 국적을 모두 취득했다며 크루즈의 대선 출마 자격을 인정했습니다.


아버지가 침례교 목사인 탓에 크루즈는 강한 보수성을 띠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데로 공화당 내에서도 그의 강한 보수성에 우려를 나타내는 인물이 적지 않습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크루즈를 '미친 자식(wacko bird)'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크루즈는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지만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는 2012년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초선 상원의원인 크루즈가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3년 9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안) 반대 필리버스터 때였습니다. 당시 크루즈는 무려 21시간19분 동안 연설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FT)는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공화당과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크루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FT는 결국 현재 공화당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 좋은 것이 없다면서 공화당 지도부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역설적이게도 여론조사에서는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만이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자리를 굳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이길 수 있는 공화당 후보로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이번 미 대선은 양당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의 양자 대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화당의 주류인 부시에 대항에 강성 보수집단인 티파티와 남부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크루즈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인 2,3위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역시 주류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클린턴에 대해 소위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 우는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그 누군가가 2위권에(이번 경우엔 샌더스가 되었음)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신인이었던 오바마가 주류후보 클린턴을 꺾을 수 있었던 건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위에 백인 중산층(이념적으론 중도층)으로 까지 외연 확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반면 2016년의 샌더스가 힐러리를 위협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건 오바마때와 같은 지지세의 외연 확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당초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특히 공화당의 경우, 이례적 상황이 발생한데엔 역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현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난 백인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며 초반 돌풍을 일으킨 트럼프가 이젠 대세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공화당 지도부와 주류층이 크루즈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건 앞서도 설명했듯이 결코 원하던 상황이 아닙니다. 올 11월엔 대선뿐만 아니라 하원의원 전원과 약 30%의 상원의원, 그리고 약 절반가량의 주지사 선거도 함께 치러집니다. 공화당으로선 트럼프가 만약 대선 후보가 된다면 대선은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선거에도 크나큰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 보기에 현재의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그나마 데미지가 덜할 것이라 예상되는 크루즈를 밀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공화당은 이미 대선은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앙이라면 이념적으로 트럼프보다 더 강성인 크루즈 대통령도 주류층으로선 원하는 그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원색적이라 그렇지 사실 트럼프의 이념적 성향은 지극히 중도적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된 포지션이 없다는게 정확한 표현이겠죠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자 문제만 제외하곤 오히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등 민주당후보로 보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반대로 돌아섰지만 과거 트럼프는 '낙태'이슈에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 또한 공화당으로선 마음에 들지 않는점입니다.


각설하고, 어디까지나 제 사견이지만, 공화당 주류층은 비록 백악관 주인자리는 민주당에 잃더라도 현재 상.하원 다수당의 위치만은 고수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대안이 없어 트럼프 대신 크루즈를 밀게 되었으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게 빤히 보입니다. 이례적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 미 대선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