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이 새누리당 예비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김장훈은 23일 경북 구미에 위치한 김찬영 새누리당 경북 구미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김찬영 예비후보는 누구보다 책임질 자신이 있어 여기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김찬영 예비후보 역시 자신의 블로그에 "김장훈 형님의 저 김찬영 지지 선언한 기사들이 올라옵니다"라며 "친동생처럼 저를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시는 김장훈 형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고 김장훈을 언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소속사는 “정치활동에 나선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장훈의 소속사 관계자는 “김장훈이 김찬영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것은 맞으나 정치적 지지 선언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김장훈과 김찬영 예비후보는)예전부터 알고 지낸 형제 같은 사이다. 지지 선언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소식을 한다고 하여 함께했을 뿐 정치적 스탠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입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장훈의 새누리당 예비후보 지지로 보이는 행동은 대중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고, 2008년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도 참여하는 등 비교적 진보적 색채의 연예인으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독도 문제와 메르스 사태 때 정부에 쓴소리를 날린 그이기에 더욱 이해가 안 간다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김장훈은 민족주의적 정체성도 강합니다. '독도 지킴이'를 자처하고,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의 제작비를 후원했고, 외국 매체에 한국 홍보 광고를 자비로 하는 등 일련의 행적이 이를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민족주의는 좌우 진영 어디에나 있으며, 그는 JTBC <썰전>에 나와 스스로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가 '독도 지킴이 프로젝트'를 함께한 새누리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마냥 이상한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연예인이 정치인을 지지했다가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은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닙니다. 가수 겸 연기자로 활동하는 김창완 역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최구식 무소속 후보(진주갑,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를 지지해서 논란이 됐었습니다. 그 후로 이 일은 김창완에게 꼬리표처럼 달라붙었습니다. 그가 2014년 세월호 추모곡으로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내놓았을 때도 "새누리당 지지자라면서요?", "새누리당 지지하던 걸 잊을 수가 없다"라는 내용의 악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김창완은 억울할 법도 해 보입니다. 김창완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의 조영택 광주시장을, 2010년 7.28 보궐선거에선 민주당 장병완 후보(광주 남구)의 지원 유세를 했습니다. 그는 1998년도 한겨레신문 10돌 기념식에도 참석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를 보면 김창완을 일부 누리꾼들 말처럼 '새누리당 지지자'로 규정짓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일입니다.
사실 김창완이 새누리당 지지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어느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느냐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정치를 선악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고착화되면, 결국 유명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순간, 한쪽으로부터는 열렬한 환호를 받겠지만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비유한 것이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 코너(2015년 4월~2015년 11월)였습니다. 진행자 박영진이 정치적 질문을 던지면 패널인 유민상과 김대성 등은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걸 박영진이 왜곡해서 '엄청난 정치적 발언'을 한 것처럼 만들어서 패널을 당황하게 한다는 설정입니다.
이 코너는 정치적 발언을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연예인들의 상황을 이용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뉴스 이외의 프로그램에선 감히 정치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한국의 미디어,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인 것입니다.
정치를 터부시하고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가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정치혐오를 불러왔습니다. 정치혐오 정서는 김장훈·김창완 사례에서 보듯 정치가 타협의 과정이 아닌 싸움이라는 인식을 확산하고 공론장을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물이나 세력의 정치 참여를 막으면서 구태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입니다.
결국 유명인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보고 내 편이면 환호하고 네 편이면 비난을 퍼붓거나, 직업적 능력보다 정치적 행동만을 부각하는 행위는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새누리당 후보 지지 자체를 악한 행위로 몰아가는 문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 참여를 당연한 일로 만들어야 당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유명인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김미화·김제동·윤도현 등은 소위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KBS에서 퇴출당한 바 있습니다. 이들이 방송에 나와서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안 했음에도 말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데는 이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문화가 배경에 깔려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김장훈의 새누리당 후보 지지에 대한 현재의 과도한 듯한 비난은 자제 되어야 합니다. 정치가 일상적인 행위가 되고, 정당은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서 정책에 반영해줄 수 있는 곳'이 돼야 합니다. 물론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수의 그리 거창하지 않은 정치적 의사 표시부터 존중하는 것, 그게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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