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53)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2000년 평화상을 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10일(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림원은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할 당시 한강 작가는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쳤으며, 수상 소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한강은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나는 한국에서 책과 함께,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동료 작가들의 노력과 강점이 나의 영감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축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강 작가는“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오늘 밤을 축하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외국 유명 문학상 한국 최초 수상 기록을 연이어 써왔습니다. 그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부커상을 받은 것도 한강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상황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영어로 번역된 한강의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한강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메디치상을 받은 첫 한국 작가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와 업적을 발표하는 노벨위원회는 이날 한강작가의 수상 소식을 발표하면서 공식 소셜미디어에 한글로 이름과 작품명을 함께 표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위원회는 1995년 출간된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비롯해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 다양한 작품명을 소개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됩니다. 이날 문학상에 이어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원로 소설가 한승원씨 입니다. 한 작가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후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1993년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한 작가는 시인으로 출발했습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시 ‘서울의 겨울’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 작가의 소설에 남은 시적인 문체는 시인으로서의 흔적으로도 보입니다. 1995년 첫 번째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냈고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단함을 섬세하게 살피며 존재의 상실과 방황”(문학평론가 강계숙)을 그렸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한 작가가 본격적으로 세계 문학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7년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 출간 이후였습니다.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 영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부장제의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차원으로서의 금식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책은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해외에 선보였고,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올라 곧바로 수상작이 됐습니다.
2014년 출간한 장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거나 당시 상황을 겪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5·18 당시 도청 상무관이 주무대입니다. 시신 관리를 돕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동호의 친구 정대, 동생 뒷바라지를 하다 행방불명된 정대 누나 정미 이야기가 나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한 작가는 10세였고, 이후 아버지와 친척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2017년 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문학행사에서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자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던 시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한 작가는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2016년 출간한 장편 <흰>은 ‘흰 것’에 대한 생각에서 파생된 소설입니다. 강보, 배내옷, 안개, 각설탕, 백열전구, 백목련 등의 단어를 두고 시적인 단상을 이어갑니다. 작가는 색깔에 대한 단상을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도 펼칩니다. <흰>은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까지 올랐습니다. 2021년 펴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 사건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경하의 꿈에서 시작합니다. 꿈에서는 수천그루 검은 통나무가 묘비처럼 심겨 있습니다. 경하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간 친구 인선과 함께 꿈과 연관된 영상 작업을 할 계획을 세웁니다. 세 여성의 시선으로 제주4·3의 비극을 풀어냅니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2023년 프랑스에서 <불가능한 작별>이란 제목으로 출간됐고, 그해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며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든다”고 평했습니다. 한 작가는 지난해 11월 메디치상 수상을 기념한 간담회에서 “이 책은 인간성의 아래로 내려가서 그 아래에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라며 “그렇게 애도를 끝내지 않는,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런 마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아울러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이제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며 차기작의 분위기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한 작가는 2007~2018년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구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창작론을 가르치다가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강단을 떠났습니다. 한 작가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익히기도 했습니다. 2007년엔 옛 노래 22곡에 담긴 아련한 추억을 담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펴냈습니다. 이 책에는 작가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10곡을 CD로 함께 수록했습니다. 한 작가는 미디어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어느 날 꿈에서 어떤 노래를 들었다. 두 소절이었는데 그 노래가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를 적고 계이름도 적어 두었다. 그리고 한 곡 두 곡 계속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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