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국가대표선수로 한국축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요? 한국 축구대표팀은 우리시간으로 7일 오전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대 2로 충격패를 당하며 64년 만의 왕좌 탈환에 실패했습니다. 해당 경기에서 대표팀은 ‘유효슈팅 제로’의 수모까지 당하며 ‘졸전’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경기 이후 클린스만호를 향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특히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선수들을 데리고 최악의 경기 내용을 보여준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서는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까지 나서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습니다. 더선 보도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건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현지시간 5일 저녁 식사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대표팀에서 경기 전날 저녁은 결전을 앞두고 화합하며 '원팀'임을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 중요한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쳤습니다. 그러고는 탁구를 치러 갔습니다.
살짝 늦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는데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제지하려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습니다. 손흥민이 피해 이강인의 주먹에 맞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놓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다음 날 경기에서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았습니다. 이강인과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깊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탁구 사건'이 두 선수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감독님께서 저를 더 이상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고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대표팀 내 갈등이 이강인과 손흥민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회 내내 선수들은 나이대 별로 모여 따로 노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셀틱)·김지수(브렌트퍼드) 등 어린 선수들,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그리고 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즈베즈다)·김민재(뮌헨) 등 1996년생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각자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습니다. 조별리그 1차전을 대비한 훈련 때부터 마지막 요르단전 훈련 때까지, 각 그룹의 면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나이로만 분열된 게 아닙니다. 해외파, 국내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불만을 품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했던 일도 대표팀 내 갈등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후문입니다. 이렇듯 대표팀 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맡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재기돼 온 ‘전술 부재’ 뿐 아니라 선수단 장악에도 완벽한 ‘낙제점’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한편 논란이 일자 이강인은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손흥민 형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됐다"며 "언제나 저희 대표팀을 응원해주시는 축구 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제가 앞장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 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저에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께 사과드린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축구 팬들께서 저에게 보내주시는 관심과 기대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는 형들을 도와서 보다 더 좋은 선수, 보더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발빠르게 사과를 한 이강인지만 그를 향한 논란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렇듯 기대에 못 미친 성적과 선수단 내 불화까지 여론이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축구협회는 클린스만호의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는 전력강화위원회를 15일 엽니다.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평가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만약 새 감독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대표팀은 선수들 간 갈등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3월 A매치 기간(18∼26일)을 맞이해야 합니다. 대표팀은 3월에 태국을 상대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을 소화합니다. 동남아 맹주 태국은 2차 예선 상대 팀 중 가장 껄끄러운 팀으로 꼽힙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총체적 난국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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