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와 에리아 쭈타누깐 자매와 아타야 티띠꾼, 패티 타와타나낏을 앞세운 태국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국가대항전 한화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11승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첫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출전 8개국 중 6번 시드를 받은 태국은 이 대회에서 가장 낮은 시드 우승국이라는 새 기록을 썼습니다. 비록 일개 대회의 성적이긴 하지만 세계골프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태국여자골프가 세계 최강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반면 대회 2연패를 노리던 한국여자골프는 조별리그에서 호주, 태국에 충격의 4연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호주에 덜미를 잡혀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한국야구의 재판을 보는 듯합니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한국여자골프가 조별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고진영 세계 3위, 김효주 세계 9위, 전인지 세계 12위, 최혜진 세계 25위로 꾸린 한국팀은 모리아와 에리아 쭈타누깐 자매(세계 80위, 83위)와 티띠꾼(세계 5위), 타와타나낏(세계 63위)이 나선 태국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린 TPC하딩파크 챔피언십 코스는 전장 파72 6550야드의 긴 코스입니다. 전반에만 1, 3, 5번 홀에서 파5가 세 홀이나 있습니다. 한국팀은 8개 팀 중에 평균 비거리가 가장 짧아 불리했다 할 것입니다.
올 시즌 LPGA투어 비거리 항목에서 최혜진이 64위(262야드)로 한국선수 중 제일 높습니다. 고진영은 89위(258야드)로 중위권이며 김효주는 149위(245야드), 전인지는 154위(244야드)로 하위권입니다. 태국의 티띠꾼(267야드), 타와타나낏(254야드), 에리아 쭈타누깐(259야드), 모리아 쭈타누깐(250야드)은 한국선수보다 멀리 칩니다. 장타자가 많은 미국, 태국, 호주가 한국보다 유리했다는 말입니다.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골프장비 첨단화에 맞춰 현재 PGA 토너먼트 코스는 날로 길어지는 추세입니다. 이젠 정교함에 비거리를 갖추지 못하면 LPGA 우승컵을 쉽게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난겨울 엄청난 웨이트훈련으로 드라이버 비거리를 평균 10야드 가량 늘린 김효주가 최근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사실을 꼽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태국선수들은 장타자이면서 쇼트게임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태국은 한국과 달리 1년 내내 라운드가 가능한 기후여서 엄청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충분한 샷연습을 통해 쇼트게임까지 잘합니다. 태국 골프협회장은 "1년 내내 따뜻한 날씨와 실전 코스와 같은 연습장과 숏게임장 등이 많아 주니어 선수들에게 천국과도 같다"고 자랑합니다. 아울러 태국여자골프는 자녀의 조기교육 열풍과 뛰어난 집중력으로 최근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여자골프가 '세리 키즈'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앞세워 세계 무대를 정복했던 것과 닮았다 하겠습니다. 5세에 골프를 시작한 쭈따누깐 자매는 "인생을 포기한 부모님의 희생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며 "차까지 팔아서 우리 자매를 지원해 주셨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도 더해졌습니다. 태국 대표 맥주회사인 싱하맥주는 많은 선수들을 후원하는 동시에 12개 대회의 싱하투어를 창설해 태국골프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LPGA는 "박세리가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는 데 삼성이 큰 힘을 보탠 것처럼 싱하그룹이 태국 골프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LPGA에서 한국여자골프는 우승 소식을 좀처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오랜 시간 누려온 성취감에 정신적 모멘텀이 점차 힘을 잃은 듯하다 평도 있습니다. 날로 길어지는 LPGA투어 토너먼트 코스를 정복할 폭발적인 비거리도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 여성 프로 골퍼들의 각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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