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상 최장기 군주로 지난 70년간 영국을 통치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로 서거했습니다. 영국 버킹엄궁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버킹엄궁은 "(여왕의) 주치의들이 폐하의 건강이 우려스럽다"며 "의료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온 뒤 BBC는 정규 방송을 중단한 채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했습니다. 여왕의 서거 직후 큰아들 찰스 왕세자(73)가 곧바로 찰스3세로 국왕의 자리를 승계했습니다. 찰스 왕세자는 성명을 발표하고 “소중한 군주이자 많은 사랑을 받은 어머니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며 “영국 전역과 왕국, 영연방,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왕을 잃은 것이 깊은 슬픔이 될 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여왕은 1926년 4월21일 런던에서 나중에 조지6세 왕이 된 요크공 알버트 왕자와 스코틀랜드계 귀족 출신의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였는데 가족들은 릴리벳이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렀습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여동생 마거릿 공주는 200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47년 11월20일 에딘버러공 필립 마운드배튼과 결혼했습니다.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6세가 별세하자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웨일스공 찰스 왕세자를 비롯해 슬하에 3남1녀를 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 조지6세가 선왕 조지5세의 차남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1936년 12월 큰아버지였던 에드워드 8세가 왕실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고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아버지는 왕이 됐고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 승계서열 1순위가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당시 겨우 14살이었던 그는 처음으로 대국민 라디오연설을 했습니다. 신의 가호로 영국은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1942년 군대를 사열하며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1945년에는 여군 지원부대에 자원입대하기도 했습니다. 탄약을 관리하고 군용트럭도 몰았습니다.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공은 13살 때 처음 만났는데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앤드류 왕자의 아들이었던 필립과는 먼 친척사이이기도 합니다. 이후 몇 년 동안 계속 연락을 이어오다 연인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1947년 11월20일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이듬해 찰스 왕세자를 낳았습니다. 필립과 케냐를 방문중이던 1952년 2월6일 조지6세의 부음 소식을 들었고 이후 바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본명인 엘리자베스를 그대로 존호로 썼는데 선왕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구분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불렸습니다. 1953년 6월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은 처음으로 방송에 생중계돼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후 70년간 영국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재임 기간 중 15명의 영국 총리가 거쳐 갔고, 냉전과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 유럽연합(EU) 출범과 영국 탈퇴 등 격변기를 겪어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통합니다. 영국 최장기 군주이자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에 머물며 영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기존 영국 최장 기록은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63년7개월이었습니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의 사망 이후 쇠약해진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해 10월 병원에 하루 입원했고,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습니다. 여왕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영국 전역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여왕의 장례식은 왕실 관례에 따라 열흘 동안 추모 기간을 지낸 후 국장으로 치러지게 됩니다.
이와 함께 여왕의 서거로 평생 어머니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찰스 왕세자(74)가 오랜 기다림 끝에 찰스 3세로 영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새 국왕인 찰스3세는 무려 64년간 영국 왕위 계승 1순위인 ‘왕세자’로서 활동하며 환경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 과정에서 불거진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 문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거액 기부금 수수 등 추문이 잇따르며 어머니에 비해 인기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길고 긴 ‘후계 수업’이 끝나고 ‘실전’을 맞이한 찰스 3세에겐 자신에게 멀어져 있는 영국인들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하는 큰 과제를 안은 채 왕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찰스 3세는 1948년 11월 14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52년 여왕이 즉위하면서 거의 평생 승계 1순위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왕이 영국 최장수 군주인 만큼 찰스 3세도 9살이던 1958년 영국 왕세자인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으로 책봉된 이래 무려 64년간 즉위를 기다린 기록을 남겼습니다. 찰스 3세 아래로는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가 있지만 다음 승계 순위는 찰스 3세의 아들인 윌리엄 왕세자와 그의 자녀들이 됩니다.
찰스 3세는 고령으로 건강이 불편한 여왕을 대신해서 최근 역할 대행을 늘려왔습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의회 ‘여왕 연설(Queen's speech)’이라는 주요한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세월 왕위 계승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지만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어머니와 다르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지난 5월 여론 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56%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여왕(81%)은 물론이고 아들인 윌리엄 왕자(77%)보다 훨씬 뒤쳐진 것입니다. 찰스 3세가 대중들에게서 외면 받은 결정적인 사건은 커밀라 파커 볼스와의 불륜관계 속에서 이뤄진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이혼 문제 때문입니다.
영국이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은 가운데 호감도가 떨어지고 나이 많은 왕이 등장하면서 영국 내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큰 상황입니다. 영국인들을 통합하고 지탱해주던 여왕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들 여왕을 좋아하긴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군주제에 관심이 없어서 왕실 회의론이 커질 수 있습니다. 최근 군주제에 대한 영국 내의 회의론도 찰스 3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입니다. 지난 6월 유고브의 조사에 따르면 ‘100년 후에도 군주제가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41%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18~24세 연령층에서는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연방의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여왕이 현재 영연방의 수장이지만 이는 자동승계 되는 자리가 아니고 회원국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는 바베이도스가 공화국으로 전환하면서 여왕이 군주로 있는 국가가 15개로 줄기도 했습니다. 일부 왕실전문가는 찰스 3세의 재위가 그리 길게 가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왕실 작가 필 댐피어는 AFP 통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찰스 3세가 긴 통치 기간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그러나 찰스 3세는 이러한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제 아들인 윌리엄 왕자 부부를 눈여겨 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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