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그리고 손현주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개봉 8일째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청신호를 켰습니다. 3일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한산’은 지난달 27일 개봉한 이후 8일째인 이날 오전 7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누적관객 306만 4785명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관객들의 호평까지 잇따르며 극장가 여름대전에서 승기를 잡은 모양세입니다. 이 기세라면 손익분기점인 관객 600만 명을 무리 없이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한산’의 연출자이자 제작자인 김한민 감독은 개봉 후 미디어 매체와 만난 자리에서 “과분할 정도로 좋은 평을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관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산’은 전작인 ‘명량’에 따라붙은 논란을 피하면서 후반부의 압도적인 해양 전투 장면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명량’은 1761만 명이라는 흥행 기록에도 ‘국뽕’과 ‘신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해전의 차이에 따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명량’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이순신의 고뇌, 불굴의 의지, 통렬한 역전승 등 뜨거운 구조를 가진 작품이었고 ‘한산’은 수세를 승세로 돌리기 위해 적군의 전술을 역이용하고, 학익진과 거북선을 활용한 냉철한 전략·전술이 돋보이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해전의 특색에 따라서 연출의 톤앤매너(Tone&Manner)가 정해진 것 같다”고 부연했습니다.
특히 ‘한산’의 해양 전투 장면은 단 한 번도 배를 물에 띄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더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버추얼 프로덕션을 통해 사전 시각화 작업을 하고 3000평 규모의 VFX스튜디오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촬영을 완료한 이후 CG를 입히는 기존의 공정과 다르게, 가상의 카메라를 이용한 실시간 시각화 작업으로 사전 시각화 단계에서 최종 영상물에 가까운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버추얼 프로덕션은 동영상 콘티인 프리 비주얼보다 더 발전된 기술”이라며 “가상의 카메라 워킹을 쓰면서 하나의 완벽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인데 그러다 보니까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시간과 공정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70% 정도 성공적이었던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날씨 등 변수를 줄이고 작업 현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평창동계올림픽 때 사용한 스케이트장을 VFX스튜디오로 개조해 ‘한산’을 촬영했다”며 “그곳에서 후속작인 ‘노량’까지 촬영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조재휘 평론가는 자신의 글에서 한산의 긍정적 특징 중 하나로 매력적인 악역을 꼽았습니다. [주인공과 악역은 항상 대칭 관계에 선다. 능력 있고 품격을 갖춘 악역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그에 맞서야 하는 주인공의 설정이 다듬어지고, 악역의 동기와 욕망이 명확히 설정되면 주인공 행동의 당위성, 이야기의 갈등구조와 플롯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시나리오 창작에서 이런 경우는 좀처럼 드물었던 것 같다. ‘극한직업’(2018)의 희화화된 경찰들은 그만큼 어설픈 악당들을 만났고, ‘봉오동 전투’(2019)의 일본군은 잔학함 못잖게 독립군의 유인에 순순히 휘말리는 멍청함을 과시했다. ‘한산:용의 출현’(2022)은 다르다. 김한민이 취한 전략의 영리함은 이순신(박해일)이 지닌 명장으로서의 면모를 살려내려면, 적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를 범용치 않은 인물로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한 데 있다. 부산포에 막 상륙한 와키자카가 취하는 행동들은 대사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물이 지닌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나머지 장병의 사기를 꺾지 않고자 귀환한 패잔병들을 즉결 처분하는 데선 잔인성과 냉정함을, 거북선과 충돌해 박살난 군함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첩보와 작전 수립에 공을 들이는 면면에선 이성적인 치밀함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한산’이 흥행에 청신호를 켜면서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인 ‘노량: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노량은 임진왜란 7년사의 마지막 해인 1598년을 배경으로 조선과 왜, 명 3국의 전투이자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담게 됩니다. 일찌감치 이순신 장군 역의 김윤석을 비롯해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등 캐스팅을 완료하고 ‘한산’과 동시에 제작했습니다. 오는 연말 또는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명량’이 60분, ‘한산’이 50분의 해전을 담았다면, ‘노량’은 3분의 2 분량을 해전에 할애할 전망입니다. 김한민 감독은 “임진왜란 7년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전투였고 겨울전투였고 밤전투가 많았다”며 “‘한산’과 ‘명량’에서 선보인 해전의 기술과 노하우의 집약체가 ‘노량’에서 보여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2010년 ‘명량’ 작업에 착수하면서 출발한 이순신 3부작에 어느덧 12년을 쏟아부었습니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은 역사적 인물 중에서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가장 오염되지 않은 인물로, 지금 시대에 소환될 이유가 충분하다”며 “이순신 장군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통합,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흥미진진한 해전과 함께 관객에게 잘 전달된다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뜻깊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한산’에 대한 뼈아픈 논평도 있습니다. 뉴시스 손정빈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한산을 평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한산:용의 출현'은 국뽕 영화다. 다만 이 국뽕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있는데다가 심지어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찬양해마지 않는 국뽕이다. 이 영화는 기묘하다. 캐릭터가 빈약하고 이야기는 허술하다. 그런데 어떤 관객도 그런 걸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관해 어려서부터 반복해 공부했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로 상징되는 이순신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로 대표되는 임진왜란 서사를 이미 꿰고 있다. 그래서 '한산:용의 출현'에는 캐릭터나 스토리 같은 건 없어도 된다. 이미 다 아는 걸 반복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왜군을 수장(水葬)하는 승리의 쾌감만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한산:용의 출현'은 이 한정된 역할만큼은 꽤 성공적으로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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