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파트너 관계

Chris7 2016. 2. 3. 11:34

미국은 현재 대통령 중심제, 그중에서도 정.부통령제를 통치제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선에서 대통령만 선출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우리도 광복 후 초기에는 미국식 정.부통령제를 채택하기도 했음) 미국은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가 한 티켓으로 대선전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 유고시 헌법에 의거해 국무총리가 그 직을 대행하게 되지만 미국은 당연히 부통령이 유고된 대통령직을 바로 승계해서 전임자의 남은 잔여임기를 채우게 되는 것이죠.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람은 10대 존 테일러, 13대 밀라드 필모어, 17대 앤드류 존슨, 21대 체스터 아더, 26대 디어도르 루즈벨트, 30대 칼빈 쿨리지, 33대 헤리 트루먼, 36대 린든 B. 존슨, 그리고 38대 제랄드 포드까지 총 8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현직 대통령의 암살 혹은 병사로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나 포드 대통령만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워터 게이트로‘ 임기 중 사임한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특히 포드는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선거를 거치지 않고 상원 청문회만으로 부통령 직에 오른 뒤 백악관의 주인이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두 메이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선 4-5개월 전 자당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하게 되는데,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파트너로서 11월 대선에 임할 부통령 후보를 결정하게 됩니다. 각 당의 대통령후보가 자신의 런닝메이트인 부통령후보를 지명하는 것이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 당의 대통령 후보는 런닝메이트를 지명할 때 자신과는 지역적, 이념적, 그리고 연령적으로 상호 보완될 수 있는 사람을 지명하게 됩니다. 근래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조셉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은 연륜있고 워싱턴 정치가에서 잔뼈가 굵은 바이든으로 하여금 초선 상원의원인 자신의 짧은 정치경력을 보완하려 한 것이죠. 비슷한 경우를 1960년 대선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가 당내 경선에서 자신과 치열하게 대결했던 린든 B. 존슨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한 것도 서부 텍사스 출신의 노련한 정치인인 존슨으로 하여금 북동부 출신의 젊은 자신을 지역적 그리고 연령적으로 보완하게끔 한 것입니다. 2000년 대선에 나선 테네시 출신의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코네티컷 출신의 조 리버만 상원의원을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 리버만은 최초의 유대계 부통령 후보로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오바마나 케네디와는 반대로 1988년 아버지 부시의 경우엔 고령인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 젊고 핸섬한 이미지의 댄 퀘일 상원의원을 런닝메이트로 지명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1996년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남부 켄사스 출신의 밥 돌 상원의원이 북부 뉴욕 출신이자 전 NFL 스타였던 잭 켐프 하원의원을 런닝메이트로 지명한 것이 있습니다.


또한 주지사 출신 후보들은 워싱턴 중앙정치 경력이 없거나 짧은 약점을 보완하려 연방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뉴욕 주지사였던 프랭크린 D. 루즈밸트와 조지아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헨리 트루먼, 월터 먼데일, 조지 부시를 각각 지명한 것이 그 좋은 예들입니다. 고령이자 정치 경력이 없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리차드 닉슨 당시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겠죠!


아울러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유력시 되고는 있지만 역대 대선에서 공화 양당의 후보 중 여성 대통령 후보는 아직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신 부통령 후보는 두 번 있었는데, 1984년 민주당의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과 2008년 공화당의 사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가 그들입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지명 초기에는 최초의 여성후보 (페라로의 경우)와 젊은 여성 보수후보 (페일린의 경우)라는 이유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하진 못했습니다. 페일린의 경우엔 오히려 표를 깎아먹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실제 선거결과에 부통령 후보가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 말은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가 한 티켓으로 선거에 임하긴 하지만 그 결과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통령후보가 절대적이라는 것이지요. 당선 후 각자의 역할수행에 있어서 그 격차는 더더욱 극명하게 갈립니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슈퍼파워 미국을 대표하게 되지만 부통령은 당연직인 연방 상원의회 의장으로서의 직무 수행 외엔 사실상 책임 있는 역할이 90년대까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나마도 예전에 비해선 부통령의 역할이 많이 확대되어서 그 정도입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 이전까진 사실상 '꾸어다놓은 보리자루' 신세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통령이 문자 그대로 대통령의 파트너로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하기 시작 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부터라고 봅니다.


앨 고어는 1992년 대선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에 의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클린턴의 고어 지명은 앞서 이야기 했던 대통령후보들의 부통령후보 지명 패턴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남부지역인 아칸소 주지사인 클린턴이 같은 남부인 테네시 출신이자 연령대도 비슷한 고어를 런닝메이트로 지명했기 때문이죠. 암튼 대선 승리 후 클린턴 대통령은 부통령인 고어에게 민생문제 해결을 전담케 합니다. 아울러 고어 부통령은 ‘정보고속도로’라 불리였던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건설과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를 상대로 논란의 승리 후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W. 부시와 함께 부툥령에 당선된 딕 체니는 역대 부통령들 중 가장 강력한 파워를 행사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하기도한 체니 부통령은 가히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교, 국방분야의 정부 정책 수립에 깊숙히 관여 하게 됩니다.


이렇듯 과거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 (연방상원의장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되어 있었던 미국의 부통령이 점차적으로 대통령의 파트너로서 그 역할이 확대 되고 있습니다. 올 11월에 있을 대선에서 공화, 민주 혹은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과 런닝메이트인 부통령후보로 어떤 인물들이 결정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이번에도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 간 지역적, 이념적 그리고 연령적으로 어떤 차이점들이 있을지도 주목해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