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영화 ‘국경의 남쪽’ 차승원 조이진, 탈북민의 안타까운 사랑

Chris7 2015. 11. 27. 18:39

지난 2006년 영화계는 몇 편의 히트작에만 극단적으로 관객이 쏠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공들여 완성한 의미 있는 작품들은 수 주 만에 간판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들 중 안타까웠던 하나의 작품으로 '국경의 남쪽'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차승원의 첫 멜로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국경의 남쪽'은 톱스타 (차승원)와 스타PD 출신 감독 (안판석)의 만남, 7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등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 5위라는 막막한 성적을 거두며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영화는 남북이 통일된다면 금방이라도 사회 문제로 불거질법한 탈북민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만듦새나 의미를 볼 때 이 같은 푸대접을 받아야 했을 작품은 아니지 않느냐는 한탄이 뒤늦게 뒤따랐습니다. 탈북민의 이야기가 너무 절절했기 때문일까요? 실제로 2006년의 관객들은 자극적이고 스피디한 화면과 전개에 열광하는 반면 잔잔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은 철저히 외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는 한동안 그 여자만을 떠올리지만, 그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서히 남쪽 생활에 젖어들면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북한에서 사랑했던 그 여자가 남한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귀에 익은 이 이야기의 배경은 3·8선 획정 때일 수도, 한국전쟁 당시 ‘바람찬 흥남부두’일 수도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상황이 낳은 이 의도치 않은 삼각관계는, 하지만 과거완료형이 아닙니다. ‘국경의 남쪽’은 시간차로 북한을 빠져나온 ‘탈북자’ 남녀를 통해 이 같은 관계를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줍니다.

 

 

‘국경의 남쪽’은 인민들이 탈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정치드라마도,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겪는 고단한 삶을 드러내는 사회드라마도 아닙니다. 때때로 사회성과 정치성의 민감한 바늘숲을 그냥 지나치는 영리함을 발휘하면서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엇갈리는 사랑의 슬픔입니다. 신파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신파성’을 숨기지 않은 채 이야기를 밀어붙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속 사랑은 눈물을 짜내기 위한 가식이 아니라 진실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들 모두가 변방의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한에서 이들이 발붙일 곳은 거의 없습니다. 북녘을 떠나면서 ‘공화국’을 배신한 이들에게 배신은 이제 운명이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은 한때 존경했던 지도자 동지의 이름을 명찰에 달고 행인의 옷깃을 붙든 채 호객행위를 해야 합니다. 아웃사이더의 마음은 아웃사이더만이 헤아려줄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 연화 (조이진)가 분식점에서 ‘랭면’을 주문했을 때 종업원이 “혹시 연변에서 왔수까?”라고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 남한에서 살아왔지만 심혜진이 연기한 경주 또한 아웃사이더의 마음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의 과거는 영화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선호 (차승원)를 성심성의껏 도와줄 때나 가게를 찾아온 연화에게 냉면을 대접하려 할 때 연화의 내면은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이 경계인들은 사랑 말고는 별달리 가질 수 있는 게 없는 존재들이기에 어긋난 사랑의 교집합은 더욱 애처롭게 다가 올수 밖에 없습니다.

 

 

‘국경의 남쪽’이 신파를 극복하는 또 다른 지점은 연화라는 캐릭터의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통쾌한 처녀” 연화는 직설적이며 씩씩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게 될 때나 결혼 이야기를 할 때 관계를 주도했던 연화는 남한에 온 뒤에도 쿨한 사랑법을 보여줍니다. 연화는 미적대는 선호에게 “만났으니 됐어요”라고 의젓하게 말하거나 선호의 결혼사실을 알게된 뒤 “그 여자 가슴이 만져집디까?”라고 ‘직사포’를 날립니다. 선호의 내레이션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며 이야기의 중심에도 선호가 놓여 있지만, ‘국경의 남쪽’을 연화의 시점에서 읽어도 무방한 것은 둘의 관계를 이끄는 것이 연화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호는 소심할 뿐 아니라 우유부단한 인물입니다. “지금 와서 보니 삶이란 이해할 수 없는 음표로 가득 찬 악보와도 같아서 제가 할 일은 그저 더듬더듬 연주하는 것뿐”이라고 고백하는 그는 유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이 작품을 남성적 판타지가 내재된 선호의 성장영화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물과 대사 위주의 단조로운 구성은 방송사 PD 출신 안판석 감독이 대형 스크린에 적합한 영상 화술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며, 반복되는 플래시백 또한 감정몰입을 막는 지나친 친절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박한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국경의 남쪽’은 세련되거나 섬세하진 않을지언정 성실하고 정직한 연출의 미덕을 오랜만에 확인시켜주는 영화였습니다. 놀이공원, 옥류관, 보통강 유원지 등 평양 시내를 재현한 실감나는 미술, CG 작업과 배우들의 집중력 있는 연기 또한 영화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 발견된 조이진의 활약은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주연 데뷔작인 ‘국경의 남쪽’의 흥행 실패로 그 뒤 한동안 활동이 미미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조이진의 모습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오는 1월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 조연으로 출연한 조이진의 활약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 졌으면 합니다.